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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700911
한자 鳳棲齋
영어공식명칭 Bongseojae
분야 역사/전통 시대,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서고길 81-2[고복리 22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680년대연표보기 - 봉서재 건립
이전 시기/일시 1918년 - 봉서재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 02월 14일연표보기 - 봉서재 연기군 향토유적 제4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봉서재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3호 지정
문화재 해지 일시 2014년 09월 30일연표보기 - 봉서재 연기군 향토유적 제43호 지정 해지
현 소재지 봉서재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서고길 81-2[고복리 224]지도보기
원소재지 봉서재 -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 고복리 224
성격 건물
양식 팔작지붕
정면 칸수 4칸
측면 칸수 2칸
소유자 결성장씨 문중
관리자 결성장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3호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리에 있는 조선 후기 결성장씨 문중 서당.

[개설]

봉서재(鳳棲齋)는 1600년대 말 장원주(張元冑)[1634~1700]가 만년에 창건하여 자제와 인근 마을 학동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장원주연서면 고복리 결성장씨(結城張氏) 연기파(燕岐派) 입향조이다. 자는 자장(子將), 호는 봉옹(鳳翁)이다. 또한 장원주는 결성장씨 옛 연기 입향조인 장효충(張孝忠)의 8대손이다.

아버지는 호조좌랑을 증직 받은 장진영(張振榮), 어머니는 직장 성광국(成匡國)의 딸 창녕성씨(昌寧成氏), 부인은 선략장군(宣略將軍) 행 훈련원 봉사(行 訓練院 奉事)를 지낸 김성원(金聲遠)의 딸 언양김씨(彦陽金氏)이다.

장원주는 효행을 인정받아 아들 장후한(張後翰) 때 급복(給復)과 복호(復戶)를 받았으며, 증손인 장규정(張奎貞)이 1794년 가의대부(嘉義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가 되어 법전에 따라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증직 받았다.

장원주의 묘는 고복리 비룡산 아래에 있다. 묘갈명은 1935년에 류인철(柳寅哲)이 지었다.

[위치]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서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방면으로 나 있는 지방도 제604호선을 따라 고복저수지 쪽으로 10㎞ 정도 가다 보면 고복저수지에 못 미쳐 왼쪽에 비룡산(飛龍山)이 나오고, 비룡산 동쪽에 고복리 동고마을이 있다.

봉서재는 동고마을 ‘똘배상회’ 앞 개울 다리를 건너 700m 정도 거리에 있는 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변천]

봉서재가 건립된 것은 장원주의 만년인 1680~1690년대로 추정된다. 연동면 노송리에 있는 결성장씨 문중서당인 육영재(育英齋)[옛 송동재]와 비슷한 시기이다.

초기의 봉서재는 현 위치의 북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구서당’이라는 골짜기에 있었으나 1918년 장기칠(張箕七)[1850~1937] 등에 의하여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구서당 터는 현재 복숭아밭으로 변하였다.

역대 훈장으로는 1800년대 장성갑, 장술선, 장태산, 김남철, 류인철, 홍종우, 송창헌 등이 있다. 홍종우를 마지막으로 학생을 소집하지 않았다.

류인철은 1906년 봉서재에 신식학교를 도입하여, 동광학교(東光學校)를 설립하였다. 교장으로 부임하여 측량과 등을 두었고, 시대에 적합한 천문 등을 교과목으로 가르쳤다. 배달가(倍達歌)를 작사·작곡하여 가르치기도 하였다.

봉서재에서 많은 학생이 공부하였으나 말기에 장의순, 장덕순, 장낙원, 홍덕표, 임헌문, 장은석, 홍광치, 장재화 등이 수학했다.

[형태]

현재 봉서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봉서재 오른쪽에 작은 창고가 있다.

봉서재 뒤편에는 서원을 건립한 봉옹 장원주 묘소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주변에는 수백년 묵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라고 있다.

[현황]

봉서재 정면에는 ‘鳳棲齋’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애국지사인 묵재(墨齋) 홍일섭(洪日燮)이 쓴 것이다.

오른쪽 마루에는 1918년 장기칠이 지은 ‘봉서재기’와 1922년 류인철이 지은 ‘봉서재이건기’가 있으며, 유림들이 지은 시 10여 편을 판액하여 걸어 놓았다.

서당계문서와 도조기, 교지, 서책 등이 남아 있다.

봉서재는 2014년 9월 30일 세종특별자치시 향토문화유산 제43호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장원주가 문중서당인 봉서재를 건립한 이후, 300년 이상 유지된 것으로 보아 연기 지역 내 결성장씨의 사회적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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