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1338 |
---|---|
한자 | 北門-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기대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7년 12월 26일 - 『전의향토지』 630~631면 수록 |
---|---|
관련 지명 | 북문고개 -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 |
성격 | 고개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북문고개 거주 주민들|운주산 절의 승려 |
모티프 유형 | 지명유래담|흔적에 대한 유래담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정리에서 북문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북문고개의 피」는 승려가 북문고개 근처로 시주하러 왔다가 주민들이 시주하지 않자 뜬소문을 내었고, 이로 인하여 마을이 망하였다는 지명설화이다.
현재 북문고개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지만 집터 흔적이 발견되는 이유에 대한 유래담이기도 하다.
[채록/수집 상황]
1997년 전의향토지발간추진위원회에서 발간한 『전의향토지』에 수록되어 있다. 『전의향토지』에는 유석주가 자료를 제공하였다고 되어 있다.
[내용]
운주산에 절이 있었는데 한 승려가 다른 승려들의 만류에도 북문고개로 시주를 받으러 갔다. 승려는 동네 집집마다 시주를 부탁하였지만 누구도 시주하려 하지 않았다. 한 집에서는 시끄럽다고 면박을 주기까지 했다.
승려는 북문고개의 흙으로 무덤을 만들면 부자가 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동네 사람들은 소문처럼 북문고개를 파 보았지만 땅에서는 붉은 피만 흘러나왔다. 이후 북문고개에 있던 집들에서 환자가 속출하고 농사는 흉년이 들었으며,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몇 년이 흘러 동네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었고, 집이 있던 곳은 모두 밭으로 변하였다고 전하여진다.
[모티프 분석]
북문고개에 사람이 살지 않게 된 유래를 전하고 있으며, 승려에게 시주하지 않은 이후 마을이나 집안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