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475 |
---|---|
한자 | 大靜少年團體-事件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임승희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에서 1929년 5월 5일 대정보통학교와 인근 의숙 소년단체가 중심이 되어 시위행진을 벌인 사건.
[경과]
1929년 5월 5일 대정보통학교와 인근 의숙(義塾) 소년단체가 연합하여 어린이날 기념 행사로 산방굴사(山房窟寺)까지 행군하기로 하여 출발하였다. 그러나 당시 관할 경찰에서는 어린이날 관련 행사 일체를 중지하는 동시에 엄중히 경계하고 있었고, 대정읍내에서도 산방굴사는 집회 장소로서 금지하고 있었다. 이에 모슬포 경찰관 주재소에서는 행사 당일 산방굴사를 향하여 출발하려고 집합한 소년단체의 행군을 중지시키고 해산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학생들이 이에 항의하자 일제는 신성만 등 3명을 연행하였다. 소년단원들이 격분하여 관할 모슬포 경찰관 주재소 앞에 모여 들었고, 당시 순사부장에게 검거 이유를 질문하며 석방을 계속적으로 요구하였다. 일경이 이에 응답하지 않자, 소년단원들은 분개함을 참지 못하고 대오를 정돈하여 거리 시위행진을 벌였다.
[결과]
당시 대정 소년단체 단원들이 어린이 노래를 부르며 시내를 행진하면서 경찰의 해산 명령을 듣지 않자 일경은 즉시 4~5명을 검거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 행렬은 그칠 줄 모르고, 40~50여명을 검거하는 사태로 악화되었다. 결국 제주 본서에서 4~5명의 경관을 대동하여 시위 현장에 나타났다. 이에 거리에 몰려 있던 군중들은 차츰 해산하고, 5월 6일 대강의 심문을 마친 후 김찬종, 신성만 등 16명을 자동차 2대에 태우고 본서까지 압송하여 취조하고 난 뒤에야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의의와 평가]
일명 ‘대정 소년단체 어린이날 사건’과 같이 1920년대 말 제주 소재 보통학교 어린이를 중심으로 벌인 항일활동은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연이어 발생하였고 이는 결국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즉, 학생들의 항일운동으로 말미암아 당시 도내 초·중등학교는 물론 청년단체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쳤고, 1930년대 들어서면서 청년 사회주의자들의 지도 아래 다양한 방향으로 저항동동이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