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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경비대 제9연대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600491
한자 朝鮮警備隊第九聯隊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찬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8년 5월 20일연표보기 - 국방경비대 제9연대 소속 하사관들이 탈영, 한라산 게릴라 측에 가담
발생|시작 장소 조선경비대 제9연대 사건 - 대정면 보성리 대정지서지도보기

[정의]

제주 4·3 사건 당시 국방경비대 제9연대 병사들이 부대를 탈영하여 한라산 게릴라 측에 가담한 사건.

[역사적 배경]

9연대 병사들 가운데 한라산 무장대에 동조한 자들이 1948년 5월 새로이 부임한 박진경(朴珍景) 제9연대장의 강경 진압책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경과]

1948년 5월 20일 국방경비대 제9연대 소속 하사관 11명을 포함한 병사 41명이 모슬포부대를 탈영하여 한라산 게릴라 측에 가담한 사건이 발생했다. 제주도 출신이 대부분인 이들 9연대 병사들은 자신들의 무기와 탄약 5,600발, 경비대 트럭을 갖고 탈영했다. 완전 무장한 이들 탈영병들은 부대 인근인 대정면 보성리 소재 대정지서를 덮쳐 경찰관과 급사 등 5명을 사살했다. 이어 서귀포경찰서에 들어가 토벌작전에 출동한 부대라고 속여 트럭 1대를 지원 받은 뒤 남원면 신례리 방면으로 입산했다.

[결과]

이 사건은 미군정의 토벌 정책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미군정은 본토에서 증파된 5연대, 6연대 응원병력을 앞세워 입산사건 직후 강력한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미군정은 이 사건 이후 9연대를 불신했다. 사상적으로도 의심하게 되었다. 결국 모슬포9연대는 이 사건 직후 무장을 해제당했고, 일시적이지만 격리 수용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군정은 9연대의 존폐 문제를 심도 있게 검토한 결과, 9연대를 해체하고 잔여병력을 11연대에 흡수시켰다.

9연대 병사의 무더기 입산은 국방경비대에 토벌작전 출동 명령을 내렸던 미군정으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군인들의 입산은 유격대의 무장을 강화시키는 한편, 산사람들의 사기를 고무시켰다. 또한 무력 투쟁을 장기화하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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