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4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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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現代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집필자 | 박찬식 |
[정의]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의 1945년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내용]
1. 미군정 시대
4·3 사건에 이어서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피난민들이 대거 제주에 들어왔다. 제주도에는 수만 명의 4·3 사건 이재민과 본토에서 온 피난민들로 들끓었다. 전쟁 발발 10개월이 지난 1951년 5월 중순에는 피난민이 15만여 명에 이르러 전체 도민의 절반을 넘어설 정도였다. 이들 피난민과 제주도민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950년대 제주도의 사회와 경제는 6·25 전쟁으로 인한 피난민의 입도, 1954년 4·3 사건으로 소개되었던 중산간 지대 주민들의 원주지 복귀 등으로 혼란과 정착이 엇갈렸다. 경제는 4·3 사건으로 인한 피해 복구 사업에 치중하였고, 지역 개발은 다음 시기의 과제로 넘어갔다.
2. 1960년대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남으로써 한국 사회는 민주적인 시민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제주도에서도 4월 27일부터 3일간 대대적인 학생·시민 데모가 일어나 4·3 사건 이후 처음으로 사회운동이 전개되었다. 당시 학생들은 자유당 인사들에게 부정 선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하였다.
7·29 선거에서는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혁신계 정당인 한국사회당의 김성숙[항일운동가]이 자유당 출신의 현오봉을 누르고 남제주군 선거구 민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제주대학교 법과생들은 4·3 사건의 진상 해명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5·16 군사정변으로 단절되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30여 년 간 군부정치·군사문화가 20세기 후반부 한국역사를 관철하였다.
3.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1972년 10월 유신을 통하여 행정 기구와 안보 기구 등을 중심으로 국가 체제와 사회를 모두 장악하는 강력한 권위주의 통치를 실시하였다. 한편으로는 근대화를 통한 경제 번영이라는 최고 목표가 설정되어 성장 일변도의 경제정책을 추진하여 갔다.
박정희 시대 제주도민들은 항상 높은 여당 지지율을 보였고, 이에 답하기라도 하듯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도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였다. 1966년의 제주도 특정 지구 지정, 1971년의 제주도종합개발10개년계획 수립, 1973년의 제주도 특정 지역 관광 종합 개발 계획 수립 등을 거치면서 제주도의 개발이 추진되었다. 그리고 1960년대 중반부터 증식되기 시작한 감귤은 이 시기 제주도민들의 수입 증대에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제주도민들은 이 시기에 전반적으로 소득 수준이 향상되었다.
물과 전기·통신의 보급, 도로의 혁명, 항공로의 개설 등 20세기 문명의 혜택을 본격적으로 입기 시작했던 때였다. 소위 ‘보릿고개’란 말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1971년부터 시작된 새마을운동으로 마을길이 포장되고, 초가지붕이 개량되는 등 농촌 근대화 열풍이 불었다. 새마을운동을 거치면서 제주도의 모든 마을은 외형적으로 변화하였지만,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문화가 아울러 파괴되어 버렸고, 체제 유지를 위한 이념 교육의 도구로 활용되어 버리는 병폐도 낳았다.
한국 사회는 1960~1970년대를 통하여 세계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시간 내에 폭발적인 산업화, 즉 자본주의 발전을 경험함으로써 근본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또한 새로운 중산층 시민 계층의 성장으로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4. 1980년대 이후
대외적으로 1980년대 후반 소연방의 해체, 동유럽 국가들의 탈사회주의는 냉전 체제의 붕괴를 가져와, 한국 사회에 세계화·개방화의 파고가 밀려오고, 다양한 문화적 가치관이 유행하게 되었다. 1990년대 시작된 민선 자치의 시행으로 주민들의 참여 자치 기회가 더욱 확대되었고, 시민 단체의 활동이 주목을 받게 되었다. 민선 자치는 지방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서 당연한 귀결이었나, 단기적이고 선심성에 치우친 행정으로 일관하여 버리는 병폐를 낳기도 하였다.
1990년대 제주도의 경제는 이전과 달리 뚜렷이 위기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개방화 정책의 표방으로 제주도의 경제를 지탱하여 왔던 감귤 산업이 위기를 맞이하였다. 제주도 개발 특별법 제정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냈던 ‘지속 가능한 도민 주체의 개발’ 공감대는 시험대에 서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IMF 위기 상황으로 인해 제주도의 발전 정책은 근본적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책적 대안으로 국제 자유 도시, 특별자치도 플랜이 도출되어 현재 추진 중에 있다. 환경 보전과 개발의 상충, 개방과 전통 고수의 가치관 대립 등 20세기 말 제주 사회는 시험과 도전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제 국제 자유 도시와 특별자치도, 세계 평화의 섬, 세계 경관의 섬을 지향하는 제주도는 다시 한번 동북아의 미래를 짊어진 세계가 찾는 희망의 섬으로 거듭나기 위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