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600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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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帝淵懸垂橋崩壞事故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승희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81년 12월 17일 - 서귀포시 중문동 천체연에 가설중이던 현수교 붕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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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시작 장소 | 천제연 현수교 붕괴 사고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
성격 | 사고 |
관련 인물/단체 | 이종호·김정기·김봉우 |
[정의]
1981년 12월 17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에 위치한 천제연(天帝淵)에 가설 중이던 현수교(懸垂橋)가 붕괴된 사고.
[개설]
1971년 제1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확정·공포됨에 따라 제주도를 1개 권역으로 구획하는 국제적 관광지로의 개발이 계획되었다. 이에 국토종합개발계획의 보조적 성격을 지닌 제주도종합개발10개년계획이 수립되어 1971년부터 1981년까지 제주 지역 개발이 종합적으로 착수되었다. 특히 건설부 주관 하에 국제적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사회 간접 시설 확충과 지역 사업을 국가적 지원 사업의 우선순위에 반영하는 것을 기본 방향으로 하여 추진되어 왔다.
그러한 가운데 지난 1981년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수립되어, 1982년부터 1991년까지 전 국토 공간을 대도시 생활권, 지방도시 생활권, 농촌·도시 생활권으로 구획하여 제주도를 1개 지방도시 생활권으로 설정하는 계획안을 수립한 바 있다.
정부에서는 천연의 관광 보고를 개발, 외국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국립공원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제주 전역을 하나의 관광권으로 설정하고 제주관광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하였다. 이에 제주시는 관광 중추 지구로, 중문관광단지는 2백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 수준의 종합 관광단지로 개발 중에 있었다.
총 2단계 사업으로 나누어 1985년까지 완성할 중문관광단지 개발사업 가운데 도로·상수도·전기·통신시설 등 기반시설은 건설부 등 정부와 공공기관이 맡아 1981년까지 완성하고, 제주관광개발공사는 토지 매입을 비롯한 단지 조성·조경·휴게시설·관리 청사, 그리고 천제연 계곡 현수교 등을 건설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처럼 제주도 지역을 종합 개발하고, 제주시를 성장 거점 도시로 선정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이 확정 발표된 지 이틀이 지난 1981년 12월 17일 제주중문관광단지 개발 사업에 의해 제주관광개발공사가 천제연 폭포 계곡에 설치하고 있던 현수교가 붕괴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다.
[경과]
1981년 12월 17일 오후 3시 15분경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조성 중이던 중문관광단지 안에서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천제연 계곡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현수교[구름다리]가 준공을 앞두고 무너져 내린 것이다. 천제연 현수교는 처음으로 우리나라 기술진에 의해 건설되던 공사였는데, 상판을 지탱하던 와이어 로프를 고정시키기 위해 땅속 깊이 박아 놓은 ‘와이어 바’와 로프의 이음새가 길이 160m의 상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겨져 나가면서 50m 깊이의 계곡 밑으로 떨어져 내린 사고였다.
당시 현수교 설계 사업은 남해대교와 강원도 강촌교 등에 이어 세 번째로 구조물 공학 상 고도의 설계 및 공정 기술을 요하며, 완벽한 자재 사용은 물론 시공에서도 철저한 기술 감독과 주의가 필수적인 난공사로 알려져 있던 만큼, 현수교 붕괴 사고는 당시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부실과 날림공사로 인한 것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일단 도급을 맡은 큰 회사가 다시 이를 부실업자에게 하도급 시킨 데에서 사고가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당시 천제연 현수교 공사 또한 당초 S종합건설[삼성종합건설]이 제주관광개발공사로부터 도급을 받았으나 기본적으로 기둥을 세우는 토공과 구조물 제작 작업만을 완료하고 전체 공정의 상당 부분을 B산업[부강산업]측에 하청을 주면서 실제 자체능력의 2~3배에 이르는 힘겨운 공사를 강행하다가 일어난 사고였던 것이다.
[결과]
이 관광용 구름다리인 현수교가 붕괴되면서 다리 위에서 공사 중이던 이종호 씨[당시 36세, 서울 강서구 방화동 거주] 등 인부 11명이 숨지고 김정기 씨[당시 22세, 서귀포 중문동 거주] 등 인부 6명과 빨래하는 어머니를 따라와 다리 밑에서 놀던 김용우 군[당시 7세, 서귀포 중문동 거주] 등 총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고 발생 직후 서귀포시와 경찰은 사상자들을 공사장 트럭으로 서귀도립병원과 현대병원 등에 안치 또는 입원시켰으나 부상자 치료를 위한 혈액이 모자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또한 중문동사무소에는 김봉수 당시 서귀포시장을 위원장으로 한 사고수습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사망자 장의 절차와 피해 보상 협의 등 사후 수습 대책을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결국 협의 끝에 사망자에는 산재보험 보상금과 추가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피해가족 자녀들이 중·고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를 시공회사였던 S종합건설에서 전액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이 사고로 설계 감리를 맡았던 D기술공단 부사장 등 3명이 구속되고 시공 관계자 4명이 입건되면서 사고는 일단락되었다.
제주도 천제연 현수교 붕괴사고는 우리나라 건설업계의 해묵은 병폐가 빚어낸 참사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천제연 현수교가 규모는 작더라도 철저한 설계와 기술 감독을 요하는 힘든 공사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알려지지 않고, 경험이 부족한 소규모 업체에게 하청을 줌으로써 일어난 사고였던 것이다.
특히 국내 유수의 관광지인 제주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인 천제연이 이 사고로 인해 ‘관광 한국, 관광 제주도’의 이미지를 실추당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