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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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儒敎遺物遺跡 |
영어공식명칭 | confucian relics & monuments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천 |
[정의]
유교와 관련되는 유물 및 유적.
[유교 유물]
유교 유물은 제사와 관련된 제구(祭具)들과 유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기록들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유교적 제사의식에서 사용하는 유물로는 신주(神主), 제기(祭器), 홀기(笏記) 등이 있고, 유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기록으로는 문집(文集)이 대표적이다. 또한 가문의 역사를 담은 기록인 족보(族譜)도 대표적인 유교 유물이다. 이러한 각종 기록들은 유교적 신념에 따라 제사공동체의 역사와 의례 속에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유교 유적]
유교 유적은 크게 제사(祭祀) 공간과 강학(講學)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불교의 법당, 그리스도교의 성당이나 교회, 이슬람의 모스크 등이 설법, 강론, 설교 등 종교적 세계관이 선포되고 전달되는 공간이자 예불, 미사, 예배 등의 종교의식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데 비해, 유교전통에서는 제사 공간과 강학 공간이 구별된다.
먼저 제사 공간은 신과 인간의 의례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종묘(宗廟)와 사직(社稷) 등 국가적 차원에서 사당(祠堂)과 묘(墓) 등 개별가문의 차원까지 대표적인 유교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명분(名分)에 걸맞는 예(禮)의 실천을 강조하는 유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제사의 대상이 되는 천신(天神), 지기(地祇), 인귀(人鬼) 가운데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上帝) 혹은 천(天)으로 불리는 천신은 천하의 중심인 천자(天子)만 제사를 드릴 수 있었고, 생활 터전인 땅과 관련된 신인 지기는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제후(諸侯)까지 제사를 드릴 수 있었으며, 성인(聖人)이나 조상으로 대표되는 인귀(人鬼)의 경우에는 사대부들도 자기 조상을 제사지낼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선대 왕들을 제사지내는 종묘와 조선 땅, 그리고 거기에서 나는 곡식을 관장하는 사직을 갖추었으나, 제후국이라는 명분 때문에 하늘에 대한 제사 공간인 천단(天壇)은 없었다. 다만 고종황제의 대한제국 시절에 세웠던 원구단(圜丘壇)이 하늘에 대한 유교적 제사 공간이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우주관에 따라 원구단은 하늘을 상징하는 원형인 반면, 사직단은 땅을 상징하는 방형으로 만들어졌다.
이에 비해 조상에 대한 제사 공간은 사당과 묘로 구성된다. 유교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이 죽으면 하늘에서 비롯된 혼(魂)은 하늘로 올라가고, 땅에서 유래한 백(魄)은 땅으로 내려간다. 그리하여 조상에 대한 제사도 신혼(神魂)이 깃든 신주(神主)를 모시는 사당과 체백(體魄)을 모시는 묘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사당과 묘는 조상의 은혜에 대한 보본의식(報本儀式)을 의례적으로 구현함으로써, 공시적으로는 친족이라는 제사공동체의 혈연적 유대감을 공고히하고, 통시적으로는 과거의 조상으로부터 현재의 나를 거쳐 미래의 자손에게 이어지는 생명의 연속성에 참여하는 제사 공간이다. 돌아가신 선현 혹은 선조에 대한 기록인 묘갈(墓碣)과 신도비(神道碑) 등도 묘역에 함께 배치되는 유교 유적이다.
한편, 성균관(成均館), 향교(鄕校), 서원(書院) 등의 강학 공간은 유교적 세계관을 공부하는 곳이다. 그러나 강학 공간에는 항상 유교적 세계관을 구현한 성인들과 선현(先賢)들을 모시고 제사하는 제사 공간이 함께 있었다.
[내용]
성남시의 유교 유물로는 우선 이 지역과 관련된 유학자들의 각종 문집과 족보 등이 있으나, 현재 성남시에 보관 중인 것 중에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원자료로는 양촌(陽村) 권근(權近)[1352~1409]의 『입학도설(入學圖說)』이 있다. 그러나 극소수를 제외하면, 각종 제사 용구를 포함하여 성남시에 현존하는 대부분의 유물은 현대에 와서 새로 만들거나 영인하거나 복사한 것들이다.
한편, 성남시의 유교 유적은 사당과 묘, 묘갈과 신도비 등이 대부분이다. 조선시대까지도 이 지역은 광주문화권이었기 때문에 광주향교의 영향권에 속하여 따로 이 지역만의 향교가 없었고 현존하는 서원 역시 없다. 그리하여 현재 성남시에는 강학 공간은 없고 제사 공간만 남아 있다. 현재 성남시에 남아있는 사당은 불천지위(不遷之位 : 큰 공훈으로 영구히 사당에 모시는 것을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가 된 조상의 별묘(別廟)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서울 근교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이 지역에 세거집성촌을 이루었던 각 가문의 사당이나 묘역, 그리고 거기에 딸린 묘갈과 신도비 등이 남아 있다. 묘와 묘갈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이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는 경우가 제법 있지만, 사당은 대개 현대에 와서 새로 새우거나 중건한 경운 것들이다. 신도비들도 대체로 현대에 와서 각 문중에서 세운 경우가 많다.
[현황]
세거 집성촌이 거의 없어지고 도시화된 성남시의 환경 변화에 따라 사당이나 묘에서 행하는 제사 횟수는 기제나 시제(時祭) 등 정기적인 제사만으로 축소되고, 제사 시간도 밤에서 낮으로 바뀌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교 유적들은 유교의 쇠락에 따라 비록 영향력은 축소되었지만, 각 문중의 노력으로 인해 현대에도 지속적으로 제사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