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3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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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固城李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집필자 | 문수진 |
세거지 | 중원구 도촌동 중말|양짓말|여수동 벌말|분당구 운중동 성산운리[웃뫼루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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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유적 | 이원(李原)의 재실, 신도비-도촌동 양짓말 |
[정의]
경기도 성남시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유래]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중말에는 고려 말 이암(李嵒)의 손자이며 정몽주의 문인으로 태종을 도와 공신이 되고 세종 때에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1368~1429]의 6세손 이오(李墺)가 병절교위로 서울에 살다가,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세거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는 양짓말 언덕에 느티나무를 네 그루를 심고 그의 호를 사괴정(四槐亭)이라 했는데 아들도 넷을 두었다. 이오의 장남 이원(李垣)의 부인 우봉변씨는 도적을 막다 죽임을 당하였으나 남편은 무사하여 정려를 받았다. 이원의 아들 7형제가 모두 벼슬길에 올라 후세가 창성하여 7개 파를 형성하였다.
[인물]
이원(李原)의 아들 이대(李臺)는 중추원부사, 이곡(李谷)은 대호군, 이질(李垤)은 한성소윤, 이비(李埤)는 동지중추원사, 이장(李場)은 상호군, 이증(李增)은 영산현감, 이지(李墀)는 대호군겸 승문원 참교였다. 이지의 아들 이륙(李陸)[1438~1498]은 내외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애국정신으로 일관하였고, 군서(群書)를 많이 알아 『청파극담(靑波劇談)』을 저술하였다.
[세거지]
고성이씨는 중원구 도촌동 중말에는 여수동 벌말에 세거하였으나 분당지구에 편입되어 폐동되었다. 분당구 운중동 성산운리[우뫼루니]에도 세거하였다.
[묘역]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중말 산에는 이원의 부친 이강(李岡)의 단을 비롯하여 그 후손들의 묘가 석물과 함께 고성이씨 집성촌을 증명하는 듯하며, 마을에는 원의 재실과 신도비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