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4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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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光洞 |
영어공식명칭 | Geumgwang-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정윤,서철수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금광동의 행정동은 금광1동과 금광2동이다. 주거 밀집 지역으로 신구대학교를 비롯하여 초·중·고등학교가 고루 분포하고 시장, 백화점, 공원 등이 가까운 거리에 있어 주거지로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명칭 유래]
금광동은 금광리(金光里)라는 자연마을의 이름을 살려서 지은 것이다. 금광리는 고려 후기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개를 지킨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인 김약시(金若時)가 은거하다 별세한 곳인데, 후에 그 자손이 벼슬에 오르고 집성촌을 이루자 세상 사람들이 광산김씨(光山金氏)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금광리’라 칭하였다 한다. 금광동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은 양쪽 산이 마주 접근하여 병목처럼 지형이 이루어져 ‘광통(光通)머리’라 칭하기도 하며, 김약시가 자손들에게 자신이 살던 이 고을을 세상에 전하지 말라고 하였다 해서 일명 ‘부전오동(不傳吾洞)’이라고도 한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세촌면 단대동(丹垈洞)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은행정이, 논골, 금광리 등을 병합하여 단대리라 하고 광주군 중부면에 편입하였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되고, 1973년 7월 창곡을 병합하면서 성남시 단대동이 되었다. 단대동은 1976년 10월 단대1동, 단대2동으로 분동되었고, 단대2동은 1980년 9월 다시 단대2동, 단대3동으로 분동되었다. 그 후 1989년 5월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단대2동은 금광1동으로, 단대3동은 금광2동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중원구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른다.
[자연환경]
금광동은 중원구의 중북부에 자리한 지역으로, 검단산 서남쪽 줄기 사면을 차지하고 있어 지대가 높고 지형의 기복이 심하다. 동쪽과 남쪽은 중원구 상대원동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쪽은 중앙로를 경계로 수정구 신흥동, 북쪽은 중원구 은행동과 접한다.
[현황]
2023년 5월 31일 기준 금광동의 면적은 1.73㎢이며, 2만 528가구, 4만 4401명[남 2만 1963명, 여자 2만 2448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주거 밀집 지역이다. 지하철 8호선 당대오거리역과 남한산성입구역, 산성대로, 광명로, 순환로 등이 지나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다.
행정동인 금광1동은 1989년 5월 단대2동에서 금광1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면적은 0.72㎢이며, 8,226가구, 1만 9529명[남자 9,669명, 여자 9,86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교육기관으로 단남초등학교, 금상초등학교, 하원초등학교, 금광중학교, 대원중학교 등이 있다.
행정동인 금광2동은 1989년 5월 단대3동에서 금광2동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면적은 1.01㎢이며, 1만 2302가구, 2만 4872명[남자 1만 2284명, 여자 1만 258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교육기관으로 성남동초등학교, 성남동중학교, 숭신여자중학교, 숭신여자고등학교, 신구대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