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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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良弼墓-墓碣 |
이칭/별칭 | 김양필의 묘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민식 |
성격 | 능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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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원형단독분 |
건립시기/일시 | 1624년 |
관련인물 | 김양필 |
소재지 주소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3 |
소유자 | 순천김씨 충정공파 종중회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에 있는 김양필(金良弼)의 묘 및 묘갈
[개설]
김양필[1587~1624]은 인조대의 인물로,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은경(殷卿)이다. 상의원정(尙衣院正)을 역임한 김사원(金嗣源)의 5세손이자 헌릉참봉(獻陵參奉)을 지낸 김유(金裕)의 장남이다.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아 평생 고향에서 은거하였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명문 사대부가의 자손으로서 근원을 잃지 않았다. 윤리와 도덕을 몸소 궁행(躬行) 하여 향제(鄕第)에서 고결한 선비로서의 추앙을 한 몸에 받았다.
[위치]
김양필 묘는 여수동의 뒤편 골짜기로 뻗어 내린 응봉(鷹峰)의 서쪽 능선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처음 건립한 묘갈은 지금은 마모가 극심하여 판독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래서 1989년에 11대손 김영연(金永淵)이 새로운 묘표를 세웠다.
[형태]
묘역 바로 위에는 아버지 김유[1561~1616]의 묘소가 위치하여 봉분 형태, 석물의 배치, 묘향이 같은 형태로, 문인석, 혼유석, 상돌, 향로석의 옛 석물이 갖추어져 있으며, 망주석과 봉분의 둘레돌은 최근에 추가로 설치하였다. 문인석(높이 159㎝)이 착용한 금관조복(金冠朝服)의 폐슬(蔽膝 : 무릎을 가리던 헝겊)에는 운문(雲文)을 장식했지만 후수(後綬 : 예복 뒤에 드리우는 띠)에는 아무런 문양도 넣지 않았다.
[금석문]
봉분 좌측에 근래 건립된 묘표는 비좌와 오석의 비신 및 8작 지붕 형태의 지붕돌[옥개석]이다. 비신의 비문은 4면에 있으며, 전면에는 세로 2열의 대자(大字)로 ‘順天金公諱良弼 配南陽洪氏合祔’(순천김공휘양필 배남양홍씨합부)의 비문이 있다. 봉분 중앙의 원래 墓表(묘표)는 비좌와 비신 월두형이다. 비좌는 4면에 덩굴무늬[당초문]와 상부에 전후 5엽, 좌우 1엽의 단판복련문이 조식되어 있다.
봉분 앞에는 방부원수(方趺圓首 : 네모형의 대좌에 월두형 비신) 양식의 묘갈(높이 176㎝)이 건립되어 있다. 족보의 내용에 의하면 정태제(鄭泰齊)[1612~1669]가 묘갈문을 짓고 조종운(趙從耘)[1607~?]이 썼으나, 지금은 마모가 극심하여 판독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다만, 비신의 상단에 가로로 쓰여 진 제액(題額 : 비의 명칭) 중에서 ‘……김공유인(金公孺人)……’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1989년에 11대손 김영연(金永淵)이 음기(陰記 : 비갈의 등 뒤에 새긴 글)를 다시 지어 새로운 묘표를 세웠다.
크기는 비좌 높이 23㎝·너비 98㎝·두께 61㎝, 비신 높이 152㎝·너비 위 60㎝·아래54.5㎝·두께 18㎝이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 산33에 위치하고 있으며, 순천김씨 충정공파 종중회에서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