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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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河洛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천화숙 |
[정의]
1846~1896. 개항기의 의병장.
[생애와 활동]
본관은 의성(義城). 경북 의성에서 출생하였으며, 후에 서울로 이주하였다. 자는 계삼(季三), 호는 해운당(海雲堂)이다. 젊어서 천문, 지리, 병서, 의학서 등을 널리 탐독하였다. 1895년 11월 단발령이 내려지자 이종동생 조성학(趙成學), 동지 구연영(具然英) 등과 이천으로 가서 이천, 양근, 지평, 광주, 안성, 음죽 방면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안성 민승천(閔承天)과 연합해 대오를 편성하고, 민승천을 이천 창의대장으로 추대하는 한편 자신은 각 군 도지휘가 되었다. 12월 5일 새벽 광주 노루목[獐項] 장터를 장악했으나, 12월 30일 적 200여 명의 습격을 받아 고전하다가 일기불순의 악조건에서 결국 이현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듬해 1월 흩어진 병사를 모아 대오를 정비하고 훈련을 실시하는 한편, 의진(義陣)을 재편성하였다. 대장에 박준영(朴準英), 여주대장에는 심상희(沈相禧)를 추대하고, 자신은 군사 겸 지휘가 되었다. 1월 30일 이천에서 남한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의병장 박준영과 광주유수 김귀성이 관군의 유혹에 넘어가 성문을 열어주어 2월 21일 산성이 함락되었다.
이후 군사 9개 연대를 거느리고 의진을 영남지방으로 옮길 것을 결심하여 안동을 거쳐 의성에 이르렀다. 의성의 오혁주(吳赫周), 영덕의 신돌석(申乭石), 안동의 유시연(柳時淵) 등과 이합집산을 거듭하였다. 안동 화촌(花村)으로 들어가는 길에 흥해진(興海津)을 거쳐 영덕으로 들어가려는 300여 명의 적군을 토벌하던 중 총상을 당하자 강물에 투신해 순국하였다.
[기타]
유고로는 『김하락진중일기(金河洛陣中日記)』가 있다. 198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