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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0719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신촌동|분당구
집필자 박종민

[정의]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마을 단위로 둔 조직.

[개설]

두레는 논농사지대에서 마을 성년남자들이 협력하여 농사를 지음으로써, 생산성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공동노동조직체였다. 주로 모내기와 김매기 등 단기간 내에 노동력을 집약시켜야 할 시기에 마을 주민들은 두레를 구성, 운영하여 농업의 생산성을 극대화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두레는 마을 성년남자들 전원이 참가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내용]

한동억, 이인순의 제보를 통해 성남지역의 예전 두레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성남지역에도 도시화와 산업화가 되기 전에 각 지역의 마을마다 두레가 있어서 논농사를 공동으로 작업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세시에 놀이를 함께 즐기기도 하였다.

새슬막 두레는 한국전쟁 당시 소멸되었으나, 1957년 대왕저수지가 생겨 논농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재구성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부터 농업기술의 변화에 따라 약화, 소멸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두레는 등자리 두레와 고등리 두레였다고 한다. 새슬막은 망종부터 하지 사이에 물길에 따라 먼저 물이 드는 논부터 시작하며 두레성원들이 모여 공동으로 모내기를 하였다고 한다. 이 지역 두레성원들은 모두 모여 김매기를 끝내면서, 백중을 전후로 호미씻기놀이를 즐겼다. 이들은 한 해 농사의 큰 고비를 무사히 넘긴 것을 축하하며,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하루 동안 놀았다고 한다.

수정구 신촌동은 40~50여년 전까지만 하여도 담박골, 큰새말, 작은새말, 뒤지매마을이 하나로 합쳐진 두레가 있었다. 신촌동 두레는 모내기 이후에 애벌김매기, 두벌김매기, 세벌김매기까지 하였다. 두레는 모내기와 김매기를 하면서, 그리고 이를 마치고 풍물을 치고 농요를 흥겹게 부르면서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에 도착하여서도 어렵고 큰 일을 마쳐서 한참 동안 놀았다.

현재의 분당지역에도 1950~60년대까지 율동, 서현동, 이매동, 수내동에 마을마다 각각의 두레가 구성되어 있었다. 율동의 경우, 꽹과리를 상쇠로 하여서 장구 2채, 소고, 징, 호적, 피리, 날라리 등을 갖추고 있었다. 이 지역 두레는 풍물과 농요로 시작하여 모내기와 김매기를 공동으로 작업하였으며, 단오와 백중을 맞이하여 흥겹게 놀았다. 또한 농한기인 정월에 이들은 각 가정을 돌면서 지신밟기를 해주어 한 해 동안 무사안녕을 빌었다. 성남지역 두레는 마을 단위로 구성되었으며, 풍물패를 동반하였다.

[의의]

두레는 농촌에서 논농사의 공동작업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동의 형태이다. 두레를 통해서 동네 사람들간에 협동노동, 상호부조, 공동오락 등 여러 가지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농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상호부조의 노동조직체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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