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7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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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泰鉉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이윤정 |
[정의]
경기도 성남 지역에서 활동한 작곡가.
[가계]
박태현은 1907년 9월 19일 평안남도 평양 설암리에서 아버지 박일찬, 어머니 한인찬 사이에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2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생애]
집안 선대로부터 예능분야에 뛰어난 가정환경과 교육열이 높은 부모로 인하여 일제강점기시절에도 철저한 신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평양에서 숭덕학교-숭실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조선을 대표하는 중학교팀에서 축구선수 생활을 하였다.
평양숭실전문학교 시절에는 체육, 미술, 음악 등 예술 전반에 탁월한 재주를 보이며 남다른 특기를 보여주기도 하였고, 스승 박윤근과 마두원 외국선교사에 의해 음악활동에 심취하기도 하였으며, 미술전람회에 입선되기도 하였다.
그의 형인 박태은이 명치대학 재학 중 매국노 이완용 저격사건에 직접 연루되어 구금되는 불행한 사건으로 인하여 가족이 서울 신당동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조선 미술전람회 입선(1932년), 국가대표급 축구선수였던 평양 생활을 접은 채 일본 가와바다미술학교로 진학하였다. 공부 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의대 입학 권유를 외면하고 일본동양음악학교 첼로과에 들어갔다.
졸업 후 귀국하여 형의 죽음 소식을 들은 후부터 조선의 민족정신에 눈뜬 채 애국가요, 국민가요, 어린이를 위한 동요 작곡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후진 양성을 위하여 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환갑 이후에는 그림 그리기와 교회 찬양대 지휘자로서 열정을 보이기도 하였다. 1980년부터 줄곧 성남에 정착하여 살면서 성남문화예술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활동사항]
박태현은 첼로 전공 후 연주활동 및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활동, 그리고 작곡을 통한 작품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음악가이다. 그의 여러 음악 활동 중 그가 음악발전에 기여한 동요 등을 작곡하는 작품활동 의 여러 음악활동 중 그가 음악발전에 큰 기여를 한 활동을 연도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46~ 「삼일절노래」 외 「한글날노래」 등 본격 작곡 활동
1948~1950 서울 중앙방송국 음악계장, 편성과장
1953~1960 전국 문화단체 총연합회 창립(사무국장, 사무총장)
1954~1956 문교부(예술위원, 음악과 교수요목 제정위원)
1961~세계 일본 음악회의 한국대표로 참가
1966~1990 서울 여성스트링오케스트라 창설(현 서울아카데미 앙상블) - 상임지휘자
1985~ 성가 대합창제 등 지휘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