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0868 |
---|---|
한자 | 福井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
집필자 | 김성환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관할에 있는 옛 지명.
[개설]
구의 최북단에 있는 지역으로서 서울특별시와 인접한 성남지역의 관문이다. 남한산성의 서쪽 비탈면을 지나 탄천에 이르는 지역으로서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수정구 창곡동과 서쪽은 신촌동과 맞닿아 있으며, 남쪽은 태평동, 북쪽은 서울특별시 강남구 및 송파구와 접하고 있다.
행정동인 복정동(福井洞)은 법정동인 복정동 및 창곡동을 관할하고 있다.
[지명]
복정동의 지명은 ‘복우물(福井)’에서 유래되었는데, 지금의 복정동 정수장 뒤편 안골로 가는 길과 밭 사이에 큰 복우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맛이 좋은 복스러운 우물이 있었기 때문이나, 어떤 이유인지 이 우물은 없어지게 되었다.
설에 의하면 영장산(靈長山)의 복정동 쪽 상봉에 있는 칠성대(七星台)의 감로천(甘露泉)이 복우물이라고도 하며 칠성대는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왕가(王家)의 기도원(祈禱園)이었다.
[연혁]
복정리는 조선시대 광주군 세촌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가마절(釜谷), 기와골[瓦谷], 안골, 응달말 등을 병합하여 복정리라 칭하였으며, 1910년 세촌면이 폐지되고 중부면이 설치되었으므로 수진리, 탄리, 단대리, 창곡리, 상대원리와 함께 중부면에 편입되었다. 그 뒤 1971년 경기도 성남출장소에 편입, 1973년 7월에 성남시 복정동이 되었으며, 1975년 3월에는 창곡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9년 5월 시 구제(區制)의 실시에 따라 수정구 복정동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취락과 세거성씨]
복정리의 마을은 가마절, 구석말, 기와말, 복우물, 사거리, 심박골, 안골, 양짓말, 윗말, 까치골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마절은 두곡(斗谷) 또는 두둑말이라고 했는데 옹기를 굽던 가마가 있어서 붙여진 명칭으로서, 장연노씨가 이곳에 최초로 정착하고 전주이씨가 살았던 것으로 전해 오고 있다.
구석말은 정수장과 경원대학교[현 가천대학교] 사이의 마을로서 구석진 곳이라 구석말로 부르게 되었으며, 청송심씨(靑松沈氏), 밀양박씨(密陽朴氏), 남양홍씨(南陽洪氏)가, 기와말은 복정동사무소가 있는 일대로서 진주강씨(晋州姜氏), 원주원씨(原州元氏), 남양홍씨, 문화유씨 등이 살았다. 그리고 옛날에 이곳에서는 남한산성에 사용하기 위하여 기와를 구웠다고 한다.
그리고 안골(內谷)은 마옥리(磨玉里)라고도 하는데,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진주강씨, 문화유씨가, 복우물은 현재 정수장 뒤편으로 연일정씨(延日鄭氏)가, 웃말은 해평윤씨(海平尹氏)가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응달막[陰村]은 가마절 남동쪽의 마을로 김해김씨가 살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