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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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陰村店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강병수 |
[정의]
조선 후기 음촌참(陰村站) 부근에 있었던 주점(酒店).
[개설]
조선시대의 역참제도는 수도 한성을 중심으로 간선도로는 전국에 10대 도로를 개설하고 이를 좌로, 중로, 우로로 크게 나누었다. 각 도로는 30~40리(약 4㎞) 정도의 거리를 두고 역참을 설치하고, 역마(驛馬)와 역정(驛丁)을 배치하여 관청의 공문을 전송하는 외에 마필과 숙식을 알선, 제공하였다.
성남지역을 통과했던 간선도로는 한성에서 동래까지 이르는 좌로와 한성에서 통영까지 이르는 중로로서 모두 간선이었다. 음촌점은 이러한 좌로로 통행되는 음촌역 부근에 설치된 주막점이었다. 즉, 음촌점은 좌로가 한성-신천-송파-음촌-이보현-경안을 통과함으로써 성남지역을 서북으로부터 동남으로 지나 쌍령과 이천을 지나 삼남대로로 이어지는 음촌참 부근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내용]
음촌점이 있었던 곳은 음촌참의 위치와 거의 같은 현재의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 구종점 부근이다. 이 지역은 그간 도시 개발로 인해 번화가로 변화하여 그 자취는 찾아볼 수 없다. 음촌이란 지명은 고려말 충신으로 이곳에 은거하였던 김약시(金若時)의 호 음촌(陰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음촌참 자체가 좌로를 통과하는 세촌면의 중심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음촌점도 주막으로서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역원제도에서 원이 공공 숙박의 임무를 수행하였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참점(站店)에 통합되었는데, 음촌점도 이러한 변화에 따라 역원제도에서 원의 역할을 흡수한 것으로 보인다. 그뒤 음촌참도 율목참(栗木站)으로 그 이름이 바뀐 것으로 보아 명확하지는 않지만 음촌점도 그 이름이 바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