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1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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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宜寧南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수진 |
[정의]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숯골에 살던 성씨.
[유래]
조선 초의 개국공신이며 영의정을 역임한 남재(南在)[1351~1419]의 자손이 수정구 태평동 숯골에 세거하였다. 태평동 남씨편은 임진왜란 무렵 의령남씨들이 마을을 이루기 시작하였는데, 광주이씨, 안동권씨, 순흥안씨 등이 사는 마을에 비하여 세도가 컸으므로 남씨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숯골의 지명도 조선조 효종 때 남칭(南稱)의 7대손 남연(南淵)[1650~1728]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가 조상을 정성으로 섬기고 효성이 지극하여 세상의 칭송이 자자했으므로, 그의 아호가 탄수(炭叟)인지라 그의 호를 따서 탄수가 사는 탄골로 불리다가 숯골로 변했다고도 한다.
남경문(南景文)의 후손이 탄리를 본거지로 하여 살면서 번성하고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며, 후에 숯골에서 복정동에 이주하여 살았다. 사송동의 남경문 6세손인 순흥부사 남오훈(南五熏)[1643~1719]이 광주 직리에서 살았고, 남오훈의 3남 동중추 남연명(南衍明)[1706~1774]이 사송동으로 분가하여 세거하다가 근래 이사하였는데, 양지동 남성우(南星祐)[1934년생]는 남연명의 8대손이다.
[집성촌]
수정구 태평동 탄리는 숯골이라고 하는데 의령남씨의 집성촌이다. 남재의 아들 남경문은 숯골에 거주하면서 의성군 남지(南智), 예문관직제학 남간(南簡), 태종의 부마 남휘(南暉) 등 세 아들을 두었는데, 남지의 둘째아들 내첨사부정 남칭의 후손이 세거함으로써 대체로 부정공파 집성촌을 형성하였다.
[인물]
남칭의 아들 남변(南忭)은 삭령군수를 지냈으며, 그 아들이 7형제인데, 남세웅(南世雄)은 병조참판, 남세형(南世衡)은 부사, 남세평(南世枰)은 안성군수, 남세준(南世準)은 이조참판, 남세측(南世測)은 병절교위, 남세건(南世健)은 예조참판, 남세언(南世彦)은 인천부사를 역임하였다.
[묘역]
수정구 수진동 살고개 밑에 있는 마을 작은능의 뒷산에 남경문(南景文) 등의 묘역이 있다. 순조 때 오랫동안 영의정을 역임하여 치적을 남긴 남공철은 남칭의 후손이며 그의 묘소는 수정구 금토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