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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1867
한자 李之剛
영어공식명칭 Lee Ji-jig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성남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권오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363년연표보기
몰년 1427년연표보기
본관 광주(廣州)
중잠(仲潛)
시호 문숙(文肅)
묘지 하대원동

[정의]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중잠(仲潛)이다. 아버지는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를 지낸 이집(李集)이다.

[활동사항]

고려 말기에 하위직에 있었다. 조건 건국 때 이방원 세력에 가담하여 한때 정도전 일파의 공격을 받기도 하였으나, 이방원이 왕위에 등극한 이후부터 태종[이방원]의 아들인 세종의 통치기에 이르기까지 조선 초기 정권의 핵심인사로 주요 요직을 거쳤다. 사헌부장령으로서 풍기단속과 공신세력 제거에 앞장서기도 하고, 중앙과 지방의 고위직을 두루 역임할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성품이 단정하고 검소했으며, 특히 재정 부서에 오래 근무했음에도 결코 축재에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1382년(우왕 8) 과거에 급제, 중서문하성의 녹사(錄事)를 거쳐, 1392년(태조 1) 기거주(起居注)로서 조선 건국에 참여하였다. 이방원의 측근으로서 1393년 정도전 일파에 의해 탄핵, 순군옥(巡軍獄)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1407년(태종 7) 문과 중시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직제학에 특별히 제수되었고, 이어 판선공감사(判繕工監事)를 지내면서 창업 초기의 궁궐 수축에 힘썼으며, 외직으로 수원부사가 되어 민정을 직접 다스렸다. 1411년 예조우참의로서 충청도·전라도 경차관에 임명되어 민정을 순찰, 탐학을 저지른 지방관들을 탄핵해 파직시켰다. 그 뒤 이조참의·예문관제학을 역임하고, 한성부윤, 경상도도관찰사를 거쳐, 다시 내직으로 옮겨 호조참판·형조참판을 지냈다.

1419년 세종이 즉위하자 하정사(賀正使)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평안도도관찰사·이조참판을 역임하고 다시 호조참판이 되어 재정 체계를 바로 하는 데 힘썼다. 1420년(세종 2) 호조판서, 이어 예조판서·대사헌·의정부참찬을 지내고 1425년 중군도총제(中軍都摠制)가 되어 군권을 총지휘하다가 곧 신병으로 사임하였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묘소]

묘는 하대원동에 있다. 하대원동광주이씨의 세거지이다. 광주이씨는 시조 이집(李集)[1314~1384]이 벼슬을 사양하고 광주땅에 은거함으로써 성남의 토성이 된 이래, 줄곧 이곳에 집성촌을 형성하여 세거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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