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0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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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晉州姜氏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문수진 |
[정의]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과 심곡동, 중원구 상대원동 등에 살던 성씨.
[유래]
진주강씨는 성남시에 5개의 세거지를 가지고 있다. 수정구 복정동 안골[내곡(內谷)]은 마옥리(馬玉里)라고도 하며 그 남쪽에 최초로 진주강씨가 정착하였다.
중원구 상대원동 사기막골의 통계공파 16세손인 강만영(姜萬永)이 이천에서 조부 강세전(姜世傳)을 따라 서울에 와서 살다가 조부가 별세하자 이천으로 모시기 위하여 내려가던 중 길이 저물어 김씨 진외가 댁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시신을 붙잡고 이천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였다. 그 이유는 이천에서 산소를 호랑이 혈에다 써서 자손에 변사가 자주 일어나 조부 강세전이 강만영을 데리고 개구멍으로 빠져 도망왔듯이 내려가면 또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강씨네가 정착하게 되었는데 강흥구(姜興求)[1925년생]는 강만영의 7대손이다.
[세거지]
고려말 예의사(禮儀司) 판서를 역임하고 조선조의 벼슬을 사양한 강천명(姜天命)의 아들 강은(姜隱)이 그 아들과 함께 복정동 안골에 정착한 후 자손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안골 뒷산은 강씨네 종산이고, 묘 아래 고가에는 후손이 살고 있는데 강영수(姜永壽)와 기와말 강건수(姜建壽)[1931년생]는 강은의 21세손이다. 심곡동 아랫말에도 세거한다.
[인물]
강은은 이색의 문인으로 양광도관찰사를 지냈다. 아들 강해(姜諧)는 통훈대부 종부사 소윤이었고, 손자 강로(姜老)[1438~1474]는 성균관 대사성, 증손 강숙회(姜叔淮)는 남원부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