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102106
한자 穿川峴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 산35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은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봉수로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동에 있는 고개.

[개설]

천천현청계산천림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천천산 또는 천천령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부터 남쪽 삼남지방에서 한양 남산에 이르는 주요한 봉수로가 위치한 곳이었으며, 또한 한양에서 동래에 이르는 주요 교통로의 요충지이기도 하였다.

천천현은 옛 문헌에 의하면 세종 연간에 남산 봉화 설치를 보고한 데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조선 초 남산에는 봉화 다섯 곳이 있었는데, 동쪽의 제1봉화는 명철방(明哲坊)에 있어 양주의 아차산과 마주보고[함경도, 강원도 연결], 제2봉화는 성명방(誠明坊)에 있어 광주의 천천봉화와 마주보며[경상도 연결], 제3봉화는 훈도방(薰陶坊)[평안도 연결], 제4봉화는 명례방(明禮坊)[평안도, 황해도 연결], 제5봉화는 호현방(好賢坊)[충청도, 전라도 연결]에 있었다. 천천의 봉화는 천림산 봉수대로 개칭되었는데, 이는 경상도로부터 올라오는 봉수를 용인 석성산 봉수대에서 남산으로 전하는 제2봉화의 마지막 봉수대였다.

[형성 및 변천]

천천현은 조선 초부터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자연발생적으로 하나의 도로가 형성되어 교통의 요충지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 팔도의 6대로 중의 제4대로는 한양에서 동래에 이르는 교통로인데, 이 4대로에 한양을 출발하여 양재와 낙생대로로 넘어가는 길목에 천천현로라는 도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대모산 기슭에 자리 잡은 헌릉[태종의 능]이 있는 탓에 이곳이 왕릉의 풍수지리상 내맥, 즉 내룡(來龍)[종산에서 내려온 산줄기]으로 중시되었다. 그리하여 세종대에는 이곳의 인적 통행으로 내맥이 깎인다 하여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하라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천천현로는 국가의 치도정책(治道政策)에서 개설된 것이 아니라 한양천도와 삼남지역으로의 왕래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요한 도로로 일찍부터 이용되고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이 천천현로를 통해 삼남지방의 인구와 물자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졌던 것이다.

[현황]

현재 경기도 성남시 금토동 산35번지에 해당하는 달이내고개 지역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