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3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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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牡丹民俗五日場 |
이칭/별칭 | 모란민속오일장,모란장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 68[성남동 4931] 일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정진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63년 - 모란민속5일장 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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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설립지 | 모란민속5일장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
현 소재지 | 모란민속5일장 -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 68[성남동 4931] 일대 |
성격 | 오일장|전통시장 |
면적 | 22,563.4㎡[대지면적]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 있는 오일장.
[개설]
모란민속5일장은 날짜 끝 숫자가 4·9일인 날에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오일장으로, 1963년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현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주민들에 의해 조성되었다.
[건립 경위]
성남 지역에서 ‘모란’이란 지명이 등장한 것은 1958년께로, 당시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에서 ‘재향군인회 모란개척단’이라는 사조직이 황무지를 개간하면서부터이다. 재향군인회 모란개척단을 만든 사람은 평양 출신의 김창숙이다. 월남하여 군인으로 복무하다 1958년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김창숙은 ‘재향군인 개척단’을 조직하고 광주군 돌마면 하대원리에서 개간 사업을 하였고, 이후 5·16군사쿠테타 직후인 1961년 6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광주군수를 역임하고 다시 재향군인 개척단에서 활동하면서 명칭을 ‘재향군인회 모란개척단’으로 바꾸면서 ‘모란’이란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재향군인회 모란개척단 단원들의 생필품 조달 등 생활 여건 조성이 문제되자 1962년경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오일장이 열리다가, 1963년 모란 지역의 상인 대표와 지역 유지들이 광주군청에 시장 개설 신청서를 제출하여 허가를 받으면서 정기 시장이 되었다. 개설 당시에는 씨름과 윷놀이, 농악놀이까지 벌이는 등 지역 주민들의 노력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변천]
1963년부터 대원천 제방 및 인근 부지를 중심으로 계속 장이 열렸고, 1974년 10월 행정적으로 모란시장의 폐장 공고가 나는 등 변화를 겪었다. 폐장 공고는 당시 행정상으로 시 단위에서는 오일장이 설 수 없기 때문에 낸 것으로 추정된다.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도시의 환경 문제를 앞세우며 시 당국이 다시 한번 모란장을 폐쇄하려 하였다. 이에 상인들의 자치적인 유치 활동과 경기도지사의 민원 수렴으로 1989년 대원천의 복개된 빈터 주차장을 오일장 터로 사용토록 하는 해결책을 찾으면서 정리되었다. 이후 1990년 하천 복개 공사가 완료되면서 둔촌대로를 중심으로 장이 열렸으며, 2018년 현재 자리인 모란민속5일장 주차장 부지로 이전하였다.
[구성]
모란민속5일장의 대지면적은 2만 2563.4㎡이고, 총 점포 수는 500여 개로 채소와 과일, 정육, 생선, 잡화 등 다양한 품목을 판매 중이다. 특히 오일장에서만 볼 수 있는 화훼류와 돼지 부속 구이를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전 전통시장의 상징과도 같았던 품바 공연 등을 볼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현황]
모란민속5일장은 서울 이남의 첫 번째 오일장으로 성남 시민 및 외부 관광객이 함께 찾는 생활형·관광형 전통시장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성남시의 급격한 도시화에도 불구하고 모란민속5일장은 평일 6만여 명, 휴일 10만여 명이 찾는 전국 최대 규모 오일장으로 성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