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0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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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選擧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심문보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개설]
선거의 종류는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 선거, 지방 자치 단체장 선거, 지방 의회 의원 선거 등이 있으며 대통령 선거는 5년마다, 나머지 선거는 4년마다 실시되고 있다. 서산에서도 대통령 선거, 국회 의원 선거, 충청남도지사 선거, 충청남도의회 의원 선거, 서산시장 선거, 서산시의회 의원 선거가 실시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초대 대통령 및 1·2대 부통령 선거는 국회의 무기명 투표로 결정되었다. 따라서 서산 지역의 주민들도 2대 대통령 및 3대 부통령 선거부터 대통령 및 부통령 선거에 처음 참여했으며, 8만 1195명이 투표하였다. 1956년 5월 15일 실시된 3대 대통령 및 4대 부통령 선거에서는 이승만(李承晩)과 장면(張勉)이 각각 당선되었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신익희(申翼熙)가 선거일 직전 급서하여 무효표가 많았다. 서산의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李起鵬)은 당선자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4대 대통령 선거 및 5대 부통령 선거는 자유당의 이승만과 이기붕이 당선되었으나, 4·19 혁명을 통해 무효가 되었다. 이후 내각 책임제로 개헌되고 양원 합동 회의의 간접 선거를 통하여 윤보선(尹潽善)이 4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중심제 및 단원제 의회제로의 개헌과 더불어 1963년 10월 15일 직접 선거로 실시된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박정희(朴正熙)가 윤보선에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게 되었다. 서산 지역의 선거 결과도 이와 비슷하였다.
1967년 5월 3일 실시된 6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박정희가 윤보선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서산 지역은 10만 6665명이 투표하였는데, 당선자인 박정희보다 윤보선이 5,821표를 더 많이 획득하였다. 1969년 10월 17일의 국민 투표에서 3선 개헌안이 가결되어 박정희는 7대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하였다.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김대중(金大中) 후보가 나섰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던 투표에서 박정희가 비교적 안정된 차이로 당선되자 선거 부정 의혹이 제기되었다. 서산 지역에서는 9만 8826명이 투표하였고, 박정희 후보가 약 1만 5000표를 더 많이 획득하였다.
8대 대통령 선거는 간접 선거로 진행되었다. 1972년 10월 17일의 ‘10·17 비상조치’로 대통령 직선제 대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도록 한 것이다.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는 선거는 1972년 12월 15일에 실시되었다. 이후 9대 대통령 선거도 8대 대통령 선거와 같은 양상이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로 비상계엄 속에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던 최규하(崔圭夏) 국무총리가 같은 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12·12사태’로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全斗煥)이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과 함께 1980년 8월 27일 제1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9대부터 11대까지 모두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전두환은 1981년 2월 25일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 선거로 실시된 12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1987년의 ‘6·10 민주항쟁’의 결과 대통령 직선제의 길이 다시금 열리게 되었고 같은 해 12월 16일 제13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집권 여당인 민정당의 노태우(盧泰愚), 통일민주당의 김영삼(金泳三), 평화민주당의 김대중, 신민주공화당의 김종필(金鍾泌)이 후보로 나서 경쟁한 결과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었다. 서산을 비롯한 충청남도 지역은 김종필 후보를 많이 지지하였다. 당시 김종필은 서산 지역 투표자 11만 9009명의 50%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 시기는 서산군과 서산시가 나눠져 있었는데 서산군에서는 4만 5606명이, 서산시에서는 2만 7394명이 투표하였다. 서산 지역에서는 서산의 지역 경제와 연고가 깊었던 통일국민당의 정주영(鄭周永) 후보가 양김 후보를 앞서는 강세를 보였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 국민회의 김대중,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 등이 출마했으며 선거 결과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었다. 서산 지역에서는 7만 8288명이 투표하였다.
2002년 12월 19일 실시된 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하나로연합 이한동(李漢東), 민주노동당의 권영길(權永吉) 등이 후보로 나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다. 서산 지역에서는 6만 9213명이 투표하였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鄭東泳),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무소속 이회창 등이 후보로 나섰으며 서산 지역에서는 6만 9287명이 투표하였다. 당선자인 이명박 후보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지역 출신인 이회창 후보가 뒤를 이었다.
[국회 의원 선거]
서산 지역에서 국회 의원 선거는 1945년 5월 10일 제헌 국회 의원 선거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1960년 7월 29일에 실시된 제5대 국회 의원 선거에 이르기까지 서산군은 서산 갑구로, 태안은 을구로 선거구를 분리하여 각 구에서 1명씩의 국회 의원을 선출하였다. 두 선거구는 제6대 국회 의원 선거부터 충남 제9지역 선거구로 단일화되었다. 제6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63년 11월 23일 실시되었다. 입후보자 8명이 모두 정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 것이 특징이었으며 투표 결과 공화당의 이상희(李相禧)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다.
제7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67년 6월 8일에 실시되었다. 출마자는 6명이었으며 투표 결과 공화당 이상희 후보가 다시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다. 제8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69년 1월 23일 개정 공포된 이른바 보장 입법(保章立法)에 의한 선거법과, 1970년 12월 22일 개정 공포된 소위 협상 선거법(協商選擧法)을 거쳐 1971년 5월 25일에 실시되었다. 서산에서는 모두 6명이 출마했으며, 개표 결과 공화당의 박승규 후보가 압도적인 득표로 당선되었다.
제9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72년 12월 30일에 공포된 새 「국회의원 선거법」과 동법 시행령 및 정당법 개정안에 의한 1선거구에서 2명씩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로 1973년 2월 27일 실시되었다. 서산군과 당진군이 충남 제7선거구로 단일화되었으며 모두 5명이 출마하였다. 투표 결과 신민당 유제연과 무소속 한영수가 당선되었다.
제10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78년 12월 12일에 실시되었다. 1977년 12월 17일 국회 의결로 개정된 「국회의원 선거법」에 따라 제7선거구인 서산·당진 지역에서 6명이 출마하였다. 투표 결과 공화당 심현직 후보자와, 신민당 한영수 의원이 당선되었다.
제11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81년 3월 25일에 실시되었으며 출마자는 모두 5명이었다. 투표 결과 민주한국당 한영수 후보와 민주정의당 김현욱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2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85년 2월 12일에 실시되었다. 1984년 7월 25일 개정된 「선거관리위원회법」으로 서산·당진 지역은 종래의 제7선거구에서 제8선거구로 개정되었다. 출마자는 4명이었으며 개표 결과 민주정의당의 김현욱과 민주한국당의 장기욱 후보자가 당선되었다.
제13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88년 4월 26일에 실시되었다. 1988년 3월 17일 「국회의원 선거법」이 개정되어 종래의 중선구제가 소선거구제로 바뀌었으며 서산군은 단독 선거구가 되었다. 출마자는 6명이었었으며 선거 결과 통일민주당의 박태권 후보자가 당선되었다. 제14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92년 3월 24일에 실시되었다. 태안군이 복군(復郡)된 후 처음으로 실시되는 국회 의원 선거였지만 선거구가 분리되지 않아 서산시·서산군·태안군이 단일 선거구로서 1명의 국회 의원을 선출하게 되었다. 5명이 출마했으며 투표 결과 민주당의 한영수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5대 국회 의원 선거는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되었다. 당시 서산의 투표자는 총 10만 1753명이었다. 총 4명의 후보자 중 자민련의 변웅전 후보가 큰 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제16대 국회 의원 선거는 2000년 4월 13일에 실시되었다. 제16대 국회 의원 선거에서는 시민단체의 조직적인 낙선 운동이 처음으로 벌어졌다. 서산에서는 9만 4581명이 투표하였다. 3명의 후보자 중 민주당 문석호 후보가 당선되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4년 4월 15일에 실시되었다. 당시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사상 최초로 가결되는 등 여러 사건들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지역구 투표율로 전국구 의석을 배정하던 방식을 지역구 투표와 비례 대표 투표로 분리하는 1인 2표제로 개정하였다. 서산에서는 8만 8447명이 투표했으며 5명의 후보자 중 열린우리당의 문석호 의원이 당선되었다. 제18대 국회 의원 선거는 2008년 4월 9일에 실시되었다. 서산시 태안군 선거구에서는 5만 6243명이 투표했으며 4명의 후보자 중 자유선진당 변웅전 후보가 당선되었다.
[지방 선거]
시군 통합 전 1991년 4월 15일 실시된 선거에서는 도의원 5명과 시의원 16명을 선출하였다. 통합시가 된 이후 1995년 6월 27일 실시된 선거에서도 이전처럼 5명의 도의원과 16명의 시의원을 선출하였다. 1998년 6월 4일 실시된 선거에서는 2명의 도의원과 15명의 시의원을 선출하였다. 2002년 6월 13일 실시된 지방 선거에서는 도의원 2명과 시의원 15명을 선출하였다. 2006년 5월 31일 실시된 동시 지방 선거에서는 도의원 2명과 시의원 11명을 선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