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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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巖二友堂 |
이칭/별칭 | 이우당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송내 마을 30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지민 |
건립 시기/일시 | 1474년 - 영암이우당 창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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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04년 2월 13일 - 영암이우당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247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영암이우당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
현 소재지 | 영암이우당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송내 마을 302-1 |
성격 | 정사 |
양식 | 민도리식 |
정면 칸수 | 5칸 |
측면 칸수 | 1칸[전후 반칸 퇴] |
소유자 | 거창 신씨 영암 종중 |
관리자 | 거창 신씨 영암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사.
[개설]
영암이우당(靈巖二友堂)은 거창 신씨(居昌愼氏) 문중의 화합과 학문 연마를 위해 지어진 정사(精舍)이다. ‘이우당’이란 당호는 충절의 상징인 대나무와 청렴결백을 뜻하는 연꽃 즉, 죽(竹)과 연(蓮)’의 이우(二友)를 뜻한다. 명종 시대에 명신이며 문필가인 신희남(愼喜男)[1517~1591]은 이곳에서 이율곡, 김인후 등 수많은 당대 명인들과 학문을 교류하고 정사를 논하였다고 한다. 홍문관 부제학과 예조 참판을 지낸 신희남의 증손인 신천익(愼天翊)[1592~1661]도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을 하며 만년을 보내었다. 영암이우당은 2004년 2월 1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영암이우당은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송내 마을 한쪽 편에 위치한다. 이우당 뒤편으로는 거창 신씨 문중의 사우(祠宇)인 송양사(松楊祠)가 있다.
[변천]
영암이우당은 1474년(성종 5) 신영명(愼榮命)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며, 당호도 신영명이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건축된 모습이 창건된 이후 500여 년간 큰 변경 없이, 원래 모습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2005년에 기둥, 도리 등 주요 부재를 일부 교체하였고 2006년에는 주변 담장의 개축이 있었다.
[형태]
이우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전후로 반칸 퇴] 규모의 단층 일자형 집이다. 평면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그 좌우로 방을 들인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는 최근에 보수한 것으로 보이는 장대석 바른층 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서는 도리만으로 결구하였다. 가구는 2고주 5량 가구이며 지붕은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현황]
최근에 전면 보수가 이루어져 건축적인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2013년 현재는 거창 신씨 문중의 집회소인 송양사의 강당 역할을 하고 있다. 송양사가 1796년 창건된 이후 별도로 강당을 신축하지 않아 이우당이 대신 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영암이우당은 15세기 말에 이 지역 사대부들이 학문 연마와 교류를 위해 지은 정사이다. 비록 현 모습이 창건 당시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희남, 신천익 등이 활동했던 16~17세기의 모습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얼마 남지 않은 이 지역 정사 건축의 유형을 볼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