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6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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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埋鬼 |
이칭/별칭 | 매귀,농악,풍물,군고,풍물굿,군기,굿,걸궁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송기태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쇠·징·장구·북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행하는 놀이.
[개설]
매구는 농악이나 풍물을 지칭하는 것으로 영암을 비롯한 호남 지역에서 많이 사용하는 명칭이다. 매구[농악]는 연행 목적에 따라 축원 농악, 두레 농악, 걸립 농악, 연예 농악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영암 지역에서는 축원과 걸립, 두레의 목적이 강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매구패의 악기와 치배 구성은 기수, 악기수, 잡색으로 구분된다. 깃발은 농기와 영기가 대부분이고 일부 지역에서 용기[덕석기]가 발견된다. 농기는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이다. 영기는 ‘令(영)’이라고 쓰여 있고 2개가 사용되며 농악대의 질서를 상징한다. 신북면 모산리의 경우 영기가 4개 사용되기도 한다. 악기는 쇠, 징, 장구, 북, 소고 등으로 구성된다. 쇠재비는 농악복으로 흰옷과 삼색 드림을 하고 상모를 쓰는 경우가 많다. 나머지 악기수들은 흰옷에 삼색 드림을 매고 고깔을 착용한다. 잡색으로는 포수, 양반광대, 각시광대, 조리 광대 등이 가장 많다.
[마을 행사와 매구]
영암 지역에서는 정월에는 대보름을 중심으로 마을 당산제가 진행된다. 이때를 전후하여 대부분의 마을에서 매구를 연행했다. 마을의 당산제는 제사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고 축제로 행해졌다. 정월 한 달 동안은 당산굿과 샘굿, 마당밟이, 판굿, 줄다리기 등의 다양한 연희와 놀이가 결합되어 마을이 축제의 공간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영암에서는 정월 보름에 당산제를 지내고 다음날부터 일주일에서 보름 간 마당밟이를 한 후 마지막 2월 초하루에 줄다리기로 전체 행사를 끝내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정월 보름을 전후해서 2월 초하루까지는 마을에서 매구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영암 지역에서는 ‘당산제를 지내면서 매구를 꼭 쳐야 한다.’, ‘매구를 처음 연행할 때는 꼭 당산을 들러서 인사를 해야 한다.’, ‘줄다리기 때까지 매구를 치면 그해 매구는 다 친 것이다.’ 등의 인식이 있는데, 이것은 매구 자체가 제의이면서 제의악(祭儀樂)으로 존재함을 말해 준다.
마당밟이 의 경우 축원과 걸립의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마당밟이를 하게 되면 기본적으로 마을의 모든 집을 돌아다니며 쌀과 돈을 걷었다. 마을이 큰 경우에는 일주일 이상 마당밟이를 해야 했고, 마당밟이 걸립을 통해 걷은 수익도 상당했다. 마당밟이를 통해 걷은 수익은 대부분 마을 기금으로 축적되어 다리를 놓거나 마을의 공공 건물을 보수하는 데 사용되었다. 마을의 자금이 많이 부족하거나 큰 공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인근 마을까지 걸립을 가서 마당밟이를 하고 기금을 모금하였다. 학산면 덕수리의 경우 현재까지도 격년제로 마당밟이를 하여 마을 기금을 모금하고 있다.
[두레와 매구]
여름 농사철과 관련하여 두레패 단위의 공동노동과 매구 연행이 파악되는데, 두레의 관행과 조직이 50~60년 전에 소멸하여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신북면 모산리의 사례를 예로 들면, 농사철 마지막 김매기 때는 마을 주민 전체가 모여서 노래를 하며 일을 하는데, 이때 논두렁에서 노래에 맞춰 악기를 연주했다고 한다. 또한 김매기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면 대농(大農)의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마을 매구꾼들이 판굿을 치며 놀았다고 한다.
[현황]
영암 지역의 마을 단위 매구 전승은 신북면 모산리, 학산면 독천리 덕수 마을, 서호면 엄길리 엄길 마을, 덕진면 용산 마을, 금정면 청룡리 중산 마을, 시종면 정동 마을 등에서 명맥을 잇고 있고, 면 단위 농악단으로는 여석산 쌍패 농악이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