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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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며, 김자양(金自養)과 김함(金緘)을 입향조로 하는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경주 지역 시림(始林)[계림(鷄林)]의 금 궤짝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신라 탈해왕이 성을 김(金)이라 지어 준 김알지(金閼智)가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시조이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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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朴赫居世)의 44세손 구산군(龜山君) 박석보(朴碩輔)를 시조로 하고, 박후(朴 土+厚)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구산 박씨(龜山朴氏)는 박혁거세의 44세손 구산군 박석보를 시조로 하는 후예로 영천 입향조는 박후이다. 봉어직장(奉御直長)을 지낸 박후가 현 경상북도 군위군 의흥현에서 비옥한 평야 지역인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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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구전리(龜田里)의 지형을 보면 타원형의 평지를 중심으로 분지를 형성하고 주변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거북 형상의 산세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구전리라는 지명은 마을의 지형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쪽 산기슭에 새로운 생활 터전인 신전(新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생활 터전을 구전(舊田)으로 불렀을 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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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귀호리(龜糊里)는 1914년 행정구역을 폐합할 때 자연 마을인 귀계(龜溪)와 호암(湖岩)을 병합하여 만든 명칭이다. 호암의 명칭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는다. 귀호리의 ‘평지마’는 귀일 북쪽에 있으며 마을의 지형이 평지(平地)이어서 ‘평지마’라 했고, 안귀일[內龜日]은 귀일에서 북쪽으로 약 1㎞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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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호리(琴湖里)의 ‘금호’ 유래는 바람이 불면 강변의 갈대밭에서 비파 소리가 나고 호수처럼 물이 맑고 잔잔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금호리에서 가장 큰 마을 중리는 1500년(연산군 6)경 창녕 조씨와 안동 권씨가 들 가운데 거주하였다고 하며, 중리 북동쪽의 내지는 1580년(선조 13)경 창녕 조씨 조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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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성(丁德盛)을 시조로 하고, 정천학(丁千鶴)을 중조(中祖)로 하며, 정몽길(丁夢吉)과 정몽상(丁夢祥)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나주 정씨(羅州丁氏)의 시조는 정덕성(丁德盛)으로 당나라에서 신라의 압해(押海)로 유배를 당하여 정착하게 되었다. 압해가 나주에 소속되면서 후손들이 나주를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후손들은 압해 정씨(押海丁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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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천리(大川里)는 초기에 정씨(丁氏) 조상이 중국 대천리에서 왔기 때문에 ‘대리(大里)’라 하였고, 또한 물이 맑고 차가웠기에 한내·생천(生川)이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리의 ‘대(大)’자와 생천의 ‘천(川)’을 따서 대천리라 칭하게 되었다. 대리는 정광성(丁光成)이란 선비가 16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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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과 화산면 경계에 있는 산. 백학산(白鶴山)은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와 화산면 가상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226m이다. 전에는 백학산 꼭대기에 토성(土城)이 있었다고 한다. 백학산은 학이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백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학산은 경상계 신라층군 반야월층으로 중생대 백악기에 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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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천리(沙川里)는 마을 앞 냇가에 금빛 나는 고운 모래가 많이 있기에 사라골[沙羅谷]이라 칭하여 왔다. 모래[沙]가 많은 하천[川]이란 의미에서 지명이 변형되어 사천리가 되었다. 사천리는 사라골 또는 효자문(孝子門)이라고 하며, 처음 이곳에 정착한 것은 400여 년 전 오천 출신 정차순(鄭次淳)이라는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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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창리(三昌里)과 관련되는 지명을 보면, 먼저 ‘고현장터’는 조선 시대부터 신녕현 동·면 소재지였으며 사람들의 왕래와 각종 물품들의 거래가 잘 되는 곳이었다고 한다. ‘한마’는 원래 큰 마을이 있었으며, ‘진동골’은 골짜기의 입구라는 뜻이다. 삼창리는 이 세 곳이 번창하기를 바라며 지은 지명으로 보인다. 삼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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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선관(仙舘)은 객사의 ‘사(舍)’자 뜻과 같은 관(館)자로 바꾸어 선관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여기에 하천을 의미하는 ‘천(川)’을 더하여 선천이라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현재의 마을 이름인 선천(仙川)은 신선처럼 아름다운 하천을 의미하기도 한다. 괴들·괴평(槐坪) 마을은 임진왜란 때 귀산 박씨(龜山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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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호리는 기룡산(騎龍山) 기슭에서 발한 시냇물이 마을 앞을 흐르면서 큰 못을 막아, 마치 못 안에 뜬 마을처럼 새로운 호수가 형성되어 매우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에서 이름 지은 것으로 보인다. 신호리(新湖里)는 사라들[沙羅谷]·야수골[也水谷]·신흥(新興)·대내실[다내곡(多內谷)] 등의 마을이 있다. 그 중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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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안천리(安川里)는 신녕 땅 ‘안천’라는 뜻에서 이름 붙인 신안천(新安川)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안천리에 있는 자연 마을 중 신안은 신라 경명왕의 여덟째 아들인 월성 대군(月城大君)의 후손이 약 420년 전 능계에 거주하였는데, 박시량(朴時亮)이 이곳에 새로 마을의 터를 잡아 정착하였다고 하여 신안이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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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정광후(鄭光厚)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세거 성씨. 영일 정씨(迎日鄭氏)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며,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를 역임한 정광후(鄭光厚)가 영천 지역에 입향하였다. 정광후는 고려 때 문과에 급제한 후 가선대부(嘉善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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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온천리(溫川里)의 신온천(新溫川)이라는 마을은 지형적으로 영천군에 속했지만, 실제 행정구역상으로는 신녕현에 속했기 때문에 신녕 땅 온천이라는 뜻에서 신온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온천리라는 명칭도 여기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온천리에는 경주 최씨(慶州崔氏)의 중시조가 처음 정착했다고 하며, 약 320년 전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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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계리(龍溪里)는 파계(巴溪) 상류의 계곡에서 용(龍)이 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뭄이 심하면 마을 사람들이 개를 잡아서 그 피를 용의 배꼽이라는 바위에 바르고 그 개의 껍질을 벗겨 그 곳에 널어 두고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렇게 제사를 지내고 나면 바위에 발라 놓은 피가 씻겨 내려갈 정도로 비가 많이 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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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월곡리(月谷里)에 있는 자연 마을 중 월령·월곡 마을은 320년 전 경주 이씨가 정착하여 개척한 곳이다. 마을 앞산이 반달 모양을 한 것과 온달 모양 두 가지 형상이어서 월령 또는 월곡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월곡리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400년 전에 조성했다고 알려진 논곡(論谷) 못이 있으며, 또 월령(月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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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죽곡리(竹谷里)는 옛날 이 마을 앞 냇가에 대나무가 많이 있었다 하여 죽천(竹川)이라 불렀다. ‘죽천’의 죽(竹)과 ‘계곡’의 곡(谷)이 합쳐 죽곡리가 되었다. 죽곡은 죽천·건너골·절골·윗대내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죽천은 약 200여 년 전에 나씨 성을 가진 선비가 이곳을 개척했다고 한다. 건너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