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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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화북댐,보현산댐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은하 |
소재지 | 보현산 다목적댐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입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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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설]
영천 보현산(普賢山) 다목적댐은 물 부족을 미리 대처하고 금호강(琴湖江)과 금호강 유역인 신녕천과 고현천의 홍수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영천 보현산 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되는 주민들의 이야기들이 관심의 대상이다.
영천시 화북면 입석리 일원 32.61㎢ 면적에 건설되는 보현산 다목적댐은 2014년 까지 완공을 목표로 2012년 8월 현재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보현산 다목적댐은 3,299억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단위의 공사이며, 댐이 완공되면 2,211만㎥의 물이 저수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화북댐’, ‘보현산댐’으로 불리다가, 보현산천문대로 연계되는 관광자원으로의 연계에 무게를 두고 ‘보현산 다목적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미국의 후버댐(Hoover dam)처럼 아치형 콘크리트 중력댐 형식으로 건설된다고 한다.
보현산 다목적댐 건설 사업은 2009년 12월 공시되었고, 2010년 1월부터 보상 협의회를 개최하는 등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토지 보상이 진행되었다. 2012년 8월 현재 이주에 따른 주민 보상은 완료된 상태이고, 주민의 절반 정도는 남고, 절반 정도는 이미 하나둘 고향을 떠났다.
보현산 다목적댐은 국내 유일의 아치형 댐으로 건설하게 되며, 별빛공원·별누리공원·물향기공원 등을 조성해 보현산천문대·보현산천문과학관·별빛마을 등과 연계시켜, 관광 자원화할 것이라고 한다. 또 생태 정화 습지 등 자연 친화적 생태 환경을 체험하는 테마 공간도 조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보상 문제로 이견]
보현산 다목적댐 건설 계획 공시 이후 이주와 보상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수몰 지구 주민과 한국수자원공사 간에 이견을 보였으니, 한국수자원공사 측에서 처음 제시한 보상 금액이 표준 공시 지가 금액으로, 실제 거래 시세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수몰 지구 주민들의 입장이었다.
2010년 3월 17일 화북면 옥계리·입석리 주민들은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추천한 감평사의 감정을 한 차례 거부하기도 하는 등 갈등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수몰 지구 주민들은 삶의 터전이었던 고향 땅을 잃은 것도 모자라 턱없이 적은 보상 금액을 제시한 한국수자원공사 측에 수몰 지구 주민들의 입장과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수차례 집회 및 시위를 가졌다.
2010년 4월 5일 수몰민 주민들은 화북면 용소리 보현댐건설대책위원회 사무실 앞에서 횡계리로 이어지는 약 5km 길을 걸으면서 적정 보상가 요구 집회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턱도 없는 보상 가격 수몰 농민 다 죽는다”, “쫒겨나서 죽을 바엔 고향에서 죽을란다”, “고향산천 못 지켜서 조상님께 면목 없소” 등의 구호를 외치고, 상여 행진, 수몰민 인형 장례식 등 거친 항의성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2010년 4월 9일에는 영천시청을 항의 방문했으며, 이에 한국수자원공사 측에서 4월 15일 오후 2시 수몰민 건의 사항 답변 및 주민 간담회를 개최했다.
2010년 6월 21일은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수몰민들의 절박함을 전달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날 수몰민들은 “갈 곳부터 정해 놓고 수몰민들 쫒아내라”, “대통령님 아시나요 수몰민의 절박함”, “연로하신 노인네들 걱정 없이 살게 하소” 등의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항의 시위를 진행했다. 7월 15일에는 정희수 국회의원을 만나 충분한 보상과 이주 단지 조성, 영세민 주거 마련을 위한 대책에 대해 질의 답변 형식의 면담을 진행했다.
2010년 7월 19일 오후 4시 30분 대책위원회 대표 16인은 영천시청을 방문해 김영석 시장과 수몰민의 보상 문제에 관해 간담회를 가졌다. 7월 26일은 대전 한국수자원공사 본사 앞에서 영주댐 대책위원회와 연대 시위를 벌였다. 7월 29일에는 김영석 영천시장이 수몰지구대책위원회를 방문하여 80여 명의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을 논의했다. 2010년 8월 7일에는 80~90세 고령의 어르신들의 눈물겨운 시위 장면이 대구 MBC 아침 7시 ‘열린 TV 희망 세상’에 방영되기도 했다.
2010년 8월 11일 영주댐 이산면 대책위원회 회원들이 보현산댐 대책위원회 사무실을 방문해 당면 문제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8월 16일 한국수자원공사에서는 건설단장이 참석한 사업 추진 설명회를 열었고, 8월 18일 김영석 영천시장과 감정평가사가 참여한 가운데 수몰민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8월 20일 이주 단지가 화북면 용소리 산 53번지로 확정되었으며, 1단지 이주자 신청이 최종 마감되었다. 2010년 8월 21일 영주 이산면 대책위원회와 함께 국토해양부 항의 시위를 가졌으며, 이후 수차례의 수몰민 총회를 거쳐 감정 및 보상에 관한 협의가 이루어졌다.
2010년 12월 최종 보상 통지가 개별 세대에 전달되었으며, 2011년 1월 25일 ‘보현산댐건설단과 함께하는 수몰 주민 화합의 장’ 행사가 보현산댐 대책위원회 사무소에서 열리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는 수몰민들의 사연]
물 부족과 홍수 피해 해소 등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밝힌 댐의 긍정적인 측면과는 상반되는 것이 고향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의 심경이다. 보상과 관련해 수차례의 집회와 간담회 등을 통한 협의가 이루어졌지만, 그 어떤 것도 평생의 터전이었던 고향을 떠나야 하는 수몰민들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보현산 다목적댐 건설로 수몰되는 영천시 화북면 입석리·용소리·하송리 세 마을의 수몰 대상 주민은 127세대이다. 이들은 적어도 2010년 안에 정들었던 고향 땅을 떠나야만 한다. 입석리 김종은[50세] 이장은 “3대를 이어 살아왔던 내 집, 가족들 먹이고 자식들 학비를 만들었던 농사의 터전을 잃고 고향을 떠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막막하고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화북면 입석리 수몰 주민 130여 세대 중 이주 단지로 이주하는 세대는 23세대에 불과하다. 20가구는 개별 이주를 선택했고, 나머지는 영천시 내로 들어가거나,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현재 대부분 이사를 갔고, 이주 단지나 개별 이주를 하는 사람들은 집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아직 수몰 지구에 머물고 있다.
화북면 입석리 최호기 씨 역시 4대째 둥지를 틀고 살았던 터전을 떠나야만 한다. 47년 전에 결혼하면서 직접 손으로 지은 집이 아래채이고, 10년 전 뜯어내고 새로 지은 집이 위채이다. 47년 전 지은 집은 기와 한 장, 벽돌 한 장 손으로 직접 올린 집이다. 구석구석 손때 묻은 집, 최호기 씨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스며 있는 그 집을 버리고 이제 곧 이곳을 떠나야 한다. 그러나 최호기 씨는 이제 곧 떠나야 할 땅에 올해도 감사를 심었다. “심지 말라고 하는데, 땅이 아깝잖아요. 감자는 금방 자라거든”이라고 말하며 최호기 씨는 평생을 함께한 땅에서의 마지막 결실을 수확하고 있다.
마을의 최고령인 94세 권필녀 할머니도 마을을 떠날 채비를 하는 중이다. 스무 살에 시집와서 이곳에서 칠남매를 키웠다. 평생을 넘게 의지하며 살아온 남편이 지난해 돌아가시고 혼자 남았다. 남편의 물건과 함께 평생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할머니의 손이 더디다. 할머니는 64년의 세월을 물속에 묻어야 하는 섭섭함과 안타까움으로 금세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입석리의 김원택[54세] 씨는 300년을 모신 조상 묘를 수몰되게 할 수 없어 이장(移葬)을 결정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날 때마다 아내와 찾았던 아버지의 산소, 올라올 때마다 풀도 뽑고 돌도 줍고 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곤 했던 곳이다. 넓었던 아버지의 묘소를 형편상 작은 곳으로 옮기게 되니 죄송한 마음이 크고, 일평생 아버지의 삶이 다 녹아 있을 고향을 지키지 못해 공연히 불효자가 된 듯하다, 또 아버지 산소를 찾을 때마다 아내는 고사리나 봄나물을 뜯곤 했는데, 그 소중한 추억의 장소를 잃게 되는 김원택 씨는 착찹한 심경을 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했다.
입석리에 사시는 81세의 김부남 할머니는 평생을 함께 살았던 동내 지기이자 사돈인 이숙자[77세] 할머니와 이주 단지로 함께 이사를 간다. 이주 단지에서도 함께 지기로 남은 생을 의지하며 살아가겠지만, 살던 터전을 잃는 섭섭함을 감출 길은 없다.
김종은 입석리 이장은 “이주 단지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걱정이 많다. 집을 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농지가 넉넉하지 않으니 결국 다른 지역으로 가야만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또 농사 기반을 다시 닦아야 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해야 하니 해결해야 할 일이 첩첩산중이다.”라고 말한다. 또 평생 마음을 의지하며 함께 살았던 마을 주민들 간에 수몰로 인해 갈등과 반목이 생기고 파벌이 형성되는 등 좋지 못한 일들이 일어나서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댐 건설이 아니라면 평생 생기지 않을 사촌 같은 이웃들이라고 한다.
정연본 하송리 이장은 “집과 농지가 다 포함되는 입석리에 비해 하송리는 농지만 포함되니 다른 곳 주민들처럼 이사를 갈 수도 없고 인근에 농지를 구해야 하니 그 불편함이 크다. 농지가 한정되어 구하기 어렵다.”며 하송리 주민들의 어려움을 하소연했다.
입석리 주민들이 동제를 지내던 소나무도 이주가 결정되었다. 새로 터전을 잡게 될 이주 단지 입석 본동으로 옮겨져 새로운 뿌리를 내릴 예정이다.
다음카페 보현산댐 수몰민 사랑방(http://cafe.daum.net/dam114)에는[원래는 보현산 다목적댐 대책위원회 카페였으나 보상 문제가 마무리된 후 카페명을 바꾸었음] 마을을 지키던 나무, 친구들과 함께 뒹굴며 놀았던 마을 앞 공터,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다리, 이웃들이 살던 정겨운 집, 어릴 적 멱 감고 놀던 도랑, 밭 사이 구불구불 난 시골길, 멀리서 마을을 지켜 주던 산 등 고향의 옛 사진을 올리며 아름답던 고향 마을이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