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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034
한자 宗敎
분야 종교/신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집필자 이동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증산도 문내도장 - 경상북도 영천시 문내동 지도보기
소재지 원불교 영천교당 - 경상북도 영천시 야사동 173-6 지도보기
소재지 통일교회 - 경상북도 영천시 문외동 지도보기
소재지 성덕도 도원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남리 1135 지도보기
소재지 영천천부교회 -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 지도보기

[정의]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초인간적인 존재를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겨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문화 현상.

[개설]

우리나라는 삼국 이전 시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종교가 등장하여 성장·발전·쇠퇴를 거듭하였고, 그 전개 과정에서 시대적·지역적 특성들이 나타나고 있다.

영천 지역의 종교 활동 역시 일찍부터 나타나고 있고, 불교와 기독교·천주교 외에도 민속신앙과 신종교들이 유입·전개되고 있다.

[내용]

1. 불교

불교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최고의 가르침으로 받들고 이를 세상에 펼치고자 하는 종교이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소승 불교(小乘佛敎)와 대승 불교(大乘佛敎)로 나뉘는데, 우리나라에 전해진 불교는 일반적으로 대승 불교에 속한다.

불교가 중국에 전파된 것은 65년 전후로, 수(隋)와 당(唐)을 거치면서 불교는 천태종·화엄종·정토종·선종 등 종파 불교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중국을 거쳐 372년(소수림왕 2) 고구려이고, 백제는 384년(침류왕 1), 신라는 가장 늦은 527년(법흥왕 14)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서울의 명칭이 바로 산스크리트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신라 혹은 서라벌, 그리고 서울은 인도의 도시 슈라와스띠(Sravasti), 즉 불경에서 ‘사위성(舍衛城)’을 번역한 음차어이다. ‘슈라와스띠’가 ‘서벌’ 또는 ‘서라벌’이 되고, 이것이 또 ‘서울’이 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불교의 영향이 깊었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신라의 수도 경주에 인접한 영천 지역의 불교는 『영양지(永陽誌)』영지사가 옛날 웅정사(熊井寺)로 개창되었다는 기록이 가장 이른 예이다. 그러나 건립 시기를 오봉(五鳳) 원년이라 하였는데, 이는 기원전 57년으로 믿기 어렵다. 실제 영천의 불교는 816년(신라 헌덕왕 8) 은해사(銀海寺)에서 출발하였고, 은해사 주변 산내 암자들을 통해 영천의 불교가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거조암(居祖庵)은해사보다 이른 시기인 효성왕 2년(738)에 창건되었다. 이들 사찰의 창건자는 원효(元曉)·자장(慈藏)·의상(義湘), 그리고 심지왕사(心地王師) 등이다.

그 후 고려 시대에도 백련암(白蓮庵)진불암(眞佛庵) 등이 세워지고, 보현산(普賢山)에는 거동사(巨洞寺)가 창건되는 등 은해사 주변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고려 말에서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영천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영향으로 유교적 성향이 특히 강해서 불교는 약화된 듯하며, 조선 시대 사찰에 관한 기록도 미약해진다.

영천에 소재한 전통 사찰로는 영천 포교당·죽림사·신흥사·영지사·신녕포교당·부귀사·수도사·진불암·한광사·거동사·묘각사·은해사·봉림사의 13개 사찰이 남아 있는데, 포교당이 두 곳, 법왕종 사찰이 1개소, 나머지는 모두 조계종에 속해 있다. 전통 사찰은 아니지만, 만불사(萬佛寺)가 가장 늦은 시기에 조성되었고, 지금도 사찰마다 법맥을 이으며 전승되고 있다.

2. 유교

영천은 고려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정몽주[1337~1392]라는 걸출한 유학자가 배출됨에 따라 유교적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후대에 그 영향으로 임고 서원(臨皐書院)이 건립되었다.

이 외에도 영천 향교신녕 향교를 비롯한 많은 서원과 사우가 건립되었는데, 도잠 서원·용계 서원·도계 서원 등이 현존하고 있다. 현존 서원 외에 입암 서원·경덕사·상덕사·위양공사 등의 기록이 남아 있어 영천 지역의 유교적 성향을 보여 준다. 특히 백학 서원은 영천 지역 최초의 근대 학교로 변모함으로써 서원에 기반한 유교적 교육이 근대 교육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천주교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최초로 소개된 것은 실학 운동의 선구자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과 교산(蛟山) 허균(許筠)[1569~1618)에 의해서이다. 이수광은 그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서 중국 이외에 서양이 존재하고 천주교라는 종교가 있음을 소개해 주었으며, 1784년(정조 8) 이승훈(李承薰)[1756~1801]이 중국 북경에서 그라몽(Louis de Grammont)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날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천주교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영천 지방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815년(순조 15) 청송에서 화북면 용계동과 정각동으로 천주교인이 이주해 오면서부터이다. 같은 시기에 청도와 영천의 경계 지점인 구룡산골에 박해를 피해 살던 순교자의 후손들이 프랑스 신부를 모시고 공소(公所) 집회를 가졌다고 한다.

영천 지역에 본격적으로 천주교가 자리 잡게 된 것은 1911년 대구교구가 설정되면서 초대 교구장 안세화 ‘드망즈 주교’가 천주교회를 이끌면서부터인데, 개인 집을 공소로 하여 교세를 확장하면서 영천본당의 설립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현재 영천에는 네 개의 본당[금호·신녕·영천·임고]과 여섯 개의 공소[신광·화산·고경·북안·자천·괴연]가 있으며, 관할 구역 내에서 사목 활동 중이다.

4. 개신교

영천 지역의 개신교는 1904년경 청통면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본격적인 근대 기독교는 아메스 아담이 1918년 지금의 제일 교회로 옮겨오면서부터라고 한다.

영천의 개신교를 대표하는 것이 자천 교회[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52호]이다. 자천 교회는 건물의 내부가 두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고, 기둥 사이에는 남자와 여자 예배석을 구분하는 칸막이를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어, 개신교 선교를 시작하던 시기의 상황과 교회 건축이 토착화되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5. 신종교

1860년(철종 11) 최제우(崔濟愚)의 동학(東學) 창제를 시작으로 기성 종교와 다른 신앙 체계를 가진 다양한 신종교와 신종교의 범주에 속해 있는 민족 종교가 발달해왔다.

영천 지역에 있는 신흥 종교 내지 신종교로는 원불교·통일교·증산도·성덕도 등을 볼 수 있다. 특히 성덕 대학교 등의 시설이 세워져 신종교 운동이 활발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1) 증산도(甑山道)

증산도는 조선 말 증산 강일순(姜一淳)[1871~1909]이 전라도 고부(古阜) 지방을 거점으로 일으킨 신종교로, 동학과 함께 한국 민중 종교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증산은 31세 되던 1901년 모악산 대원사에서 도통함으로써 후천세계의 대권을 쥐게 되었다고 하며, 이후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종교운동을 전개하였다.

강일순은 금산사(金山寺) 아래 구릿골에 광제국(廣濟局)이라는 약방을 차려놓고, 환자들을 치료하는 구호 활동을 펼쳤는데, 1920년대 흥성기(興盛期)에는 100여 교파에 6백만의 교인을 헤아렸다고 한다.

증산도의 교리는 천지공사, 병겁의통(病劫醫統), 해원상생(解寃相生), 후천선경(後天仙境) 사상이며, 현재 영천시 문내동에 증산도 문내도장이 있다.

2) 원불교(圓佛敎)

원불교는 1916년(원기 원년) 소태산(少太山) 대종사 박중빈(朴重彬)에 의해 창시된 불교계의 신흥 종교이다. 신앙의 대상과 교단의 형성 과정, 운영 방식, 제도 등을 보면 기성 불교와는 다른 각도에서 조직된 교단이다. 그러나 사상적 근본 진리면에서는 상통하고 있다.

박중빈은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20여 년에 걸친 구도의 과정을 거쳐 26세의 나이로 우주의 진리를 깨치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제창하였다. 그는 ‘파란고해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원불교를 개교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영천시 야사동에 원불교 영천교당이 있어 활발한 교세 활동을 벌이고 있다.

3) 통일교(統一敎)

통일교는 2010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서 이름을 바꾼 ‘세계기독교 통일신령협회’의 약칭으로 문선명(文鮮明)이 1954년 서울에서 창시한 신흥 그리스도교이다.

통일교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를 신령과 진리로 통일하여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의 세계를 만듦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이상을 이 땅에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계 각국에서 선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통일교의 교리는 첫째, 유일신(唯一神)인 창조주 하느님을 인간의 아버지로 믿는다. 둘째, 신·구약성서를 경전으로 받든다. 셋째, 하느님의 독생자인 예수님을 인간의 구주인 동시에 복귀된 선(善)의 조상으로 믿는다. 넷째, 예수께서 한국에 재림할 것을 믿는다. 다섯째, 인류세계는 재림하는 예수를 중심으로 삼고 하나의 대가족사회가 될 것을 믿는다. 여섯째, 하느님의 구원 섭리의 최종 목표는 지상과 천상에서 악과 지옥을 없애고 선과 천국을 세우는 데 있는 것으로 믿는다.

영천에는 문외동에 통일교회가 있고, 화북면 자천리에 통일교 경북 화북 수련소가 있다. 2000년경 협회 주관 경북교구로 지정되었었지만, 지금은 포항으로 옮겨졌다.

4) 성덕도(聖德道)

성덕도는 1952년 김옥재(金沃載)와 도학주(都鶴姝)에 의해 ‘성덕도 교화원’으로 창설되었다. 정부로부터 정식 등록된 민족 종교 중 하나이며, 전국에 12개 교구, 130여개의 교화원을 운영하고 있다.

1986년 재단법인 성덕도유지재단으로 변경되었고, 1997년부터는 성덕 대학교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사회 사업으로 성덕 수련원[청소년 수련원]과 독거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보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성덕도는 신앙의 대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믿고 수양하고 수양을 통해 마음을 맑게 한다. 『자성반성 성덕명심도덕경』이라는 경전이 있어 경전의 주요 내용은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설명하고 있다. 성덕도는 영천시 신령면 화남리에 성덕도 본원을 두고 있다.

5) 천부교(天父敎)

천부교는 1955년 평안남도 덕천 출신 박태선(朴泰善) 장로에 의해 창시된 기독교계 신종교이다. 초창기에는 한국 예수교 전도관 부흥협회[약칭 전도관]라는 명칭을 사용하였으며, 1980년 교리를 대폭 수정하면서 ‘한국 천부 교회’로 개칭하였다. 천부교는 기독교에서 갈라져 나왔으나 기독교와는 별개의 종교임을 표방하고 있으며, 따라서 회당의 종탑에도 십자가 대신 비둘기 상이 있다.

신자들의 신앙 공동체를 ‘신앙촌’이라 하며, 1957년 소시 신앙촌을 시작으로 1962년에는 덕소 신앙촌이, 1970년에는 기장 신앙촌이 설립되었다. 관련 기업으로는 한일물산·시온합섬·생명물식품·신앙촌식품 등이 있다.

천부교에서 감람나무란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을 뜻하는 것이며, 감람나무는 우리나라 땅에 오게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영천시 성내동에 영천 천부 교회가 있다.

6) 천도교(天道敎)

천도교는 동학(東學)을 바탕으로 발전한 한국의 민족 종교이다. 조선 말기 1대 교조이자 순교자인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1860년(철종 11)에 서학(西學), 즉 천주교에 반대하여 창시한 민족 종교인 동학을 1905년 3대 교조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1861~1922]가 천도교로 개칭하였고, 1860년을 포덕 원년으로 삼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에서 출생한 수운은 어려서부터 인생무상을 느끼고 참된 진리를 찾아 구도하던 중, 32세 되던 1855년(철종 6) 『을묘천서(乙卯天書)』라는 책을 구하게 된다. 37세 되던 1860년 4월 5일 『을묘천서』에 쓰인 대로 49일간의 기도 생활을 하던 중 한울님으로부터 천계(天啓)를 받고 도통을 이룬 후 동학을 창시하여 포교의 길에 들어선다.

그러나 종교 운동을 전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관청의 탄압을 받게 된다. 이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교세는 늘어나게 되고, 수운은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접주(接主) 제도를 실시하는 한편, 제자인 해월(海月) 최시형(崔時亨)[1829~1898]에게 도통을 전수하는 등 교단 형태를 갖추어 간다. 수운은 1863년 12월 동학교도들이 증가하는 것을 우려한 관청에 체포되어 1864년(고종 1) 3월 대구에서 처형된다.

수운을 계승한 해월은 지하 조직으로 교세 확장에 힘쓰면서 1867년에는 『동경대전(東經大全)』, 1881년에는 『용담유사(龍潭遺詞)』를 간행하는 등 소의경전을 마련한다. 1892년에는 전라도 삼례에서 교조 신원운동을 일으켰는데, 교조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흐름은 마침내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농민혁명으로 폭발하여 엄청난 세력을 형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혁명은 실패하고, 이후 지하 조직으로 포교를 계속하던 해월은 1897년 12월에 의암 손병희에게 도통을 전수하고, 이듬해 원주에서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의암은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명하여 교세를 정비하며, 이를 전후하여 많은 종파가 이루어진다. 의암은 일제 후 독립운동 세력과 연대하여 1919년 3.1운동을 일으키는 등 민족 대표 33인의 선봉이 된다.

천도교의 교리는 인내천(人乃天), 개벽(開闢), 보국안민(輔國安民), 동귀일체(同歸一體) 사상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7.09.18 <신종교> 일부 수정 성덕도 본원이 영천 신녕면 화남리에 있으면서 -> 삭제(본원은 경북 문경시에 있음) 성덕대학 -> 성덕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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