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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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村里 |
이칭/별칭 | 석촌,석계정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부계길[석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재우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3월 1일 - 영천군 화산면 석촌동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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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88년 5월 3일 - 영천군 화산면 석촌동에서 영천군 화산면 석촌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5년 1월 1일 - 영천군 화산면 석촌리에서 영천시 화산면 석촌리로 개편 |
행정구역 | 석촌리 -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석촌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0.87㎢ |
가구수 | 98가구 |
인구[남, 여] | 179명[남 87명, 여 92명]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석촌리(石村里)는 마을에 멋진 바위가 있어 석촌(石村)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때 석계정(石溪亭)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다시 석촌이라 하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석촌은 조선 인조 때 경주 김씨 형제가 정착한 마을이며, 박연(朴淵)덤은 마을 앞의 절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銖) 장군이 북진하는 일본군을 격파했던 곳이라 전해진다.
석촌리가 포함된 화산면은 조선 시대 신녕군의 아촌면(牙村面)과 대량면(代良面), 영천군의 지림면(淽林面)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 세 개 면과 북습면(北習面) 및 명산면(鳴山面) 일부를 합하여 신녕의 옛 이름을 따서 화산면(花山面)으로 발족되었다.
석촌리는 1995년 1월 1일 영천시·영천군이 통합해 영천시 화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자연 환경]
석촌리는 신녕천의 범람원에 건립된 마을로, 팔공산(八公山)에서 뻗은 산줄기가 마을의 서편을 가로막고, 앞쪽 동편은 임진왜란 시의 격전지였던 박연덤이 가로막아 기암절벽을 형성하며, 남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와룡(臥龍)은 석촌 남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시내가 흐르고 뒷산이 용이 누워 있는 형상이라고 해서 와룡이라고 불려졌다고 한다.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신녕천이 흘러 내려가는데, 석촌리에서 하천이 곡류한다.
[현황]
석촌리의 동쪽은 삼부리, 남쪽은 청통면, 서쪽은 부계리, 그리고 북쪽은 유성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박연(朴淵)·석촌(石村)·와룡(臥龍) 등이 있다. 석촌리의 면적은 0.87㎢이며, 인구는 2012년 7월 말 현재 98가구, 179명으로, 남자가 87명, 여자가 92명이다. 주민 대부분이 농사에 종사하며, 마늘 등 특용 작물의 생산이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