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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우회 영천지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100533
한자 槿友會永川支會
분야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천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대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사항 시기/일시 1927년 5월 27일 - 근우회 창립
설립 시기/일시 1928년 6월 2일연표보기 - 근우회 영천지회 창립 대회
해체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근우회 영천지회 해체
관련사항 시기/일시 1931년 - 근우회 해체
최초 설립지 영천청년동맹회관 - 경상북도 영천시
성격 여성운동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었던 근우회 소속 지회.

[개설]

1926년 이래 국내·외에서 추진된 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의 결과, 1927년 2월 민족협동단체인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었다. 여성운동계에서도 1926년 말부터 여성유일당 운동을 전개하여 여성운동계의 통합 단일화를 위해 1927년 5월 27일 근우회가 창립되었다.

[설립 목적]

근우회의 창립 이념과 활동의 기본 방향은 강령에 제시된 바와 같이 여성의 단결과 지위 향상에 설립 목적이 있었다.

[변천]

근우회 영천지회는 1928년 5월 15일 영천여우회(永川女友會) 간부 10여 명이 신간회 영천지회 회관에서 근우회 영천지회 준비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임시의장 백신애가 지회설치에 필요한 절차를 계획, 결정하기로 하고 회원 모집에 들어가 8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하였다. 준비위원은 백신애(白信愛)·김순혜(金順惠)·최내문(崔內門) 외 8인이다.

1928년 6월 2일 영천청년동맹(永川靑年同盟) 회관에서 창립 대회를 개최하여 김순혜의 개회사에 이어 백신애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근우회 본부에서 참석한 정칠성(鄭七星)의 근우회 취지 설명이 있었다. 위원선거에서 선출된 위원은 집행위원장 김순혜(金順惠), 서무부 백신애(白信愛) 외 2인. 재무부 이은주(李銀珠) 외 2인, 선전조직부 차목삼(車木三) 외 2인, 교육부 김영선(金永先) 외 2인, 조사부 박봉춘(朴奉春) 외 2인 등이었다.

1931년 신간회 해소론(解消論)에 따라 근우회도 소멸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근우회 영천지회의 주요 사업과 업무는 부인 교양, 아동교육, 농촌 부인·남녀 차별 철폐, 인신매매·허례미신 퇴치, 회원 친목 등에 관해 관심을 기울였다.

[의의와 평가]

근우회는 사회주의적 경향이 강하면서 반일민족운동의 성향이 짙었다. 따라서 창립 이후 계속된 경찰의 감시와 탄압으로 본래의 목적을 다할 수 없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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