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07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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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向陽亭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태훈 |
건립 시기/일시 | 1844년 - 향양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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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향양정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
성격 | 누정 |
양식 | 소로수장|홑처마|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1.5칸 |
문물|보호단위 등급 | 비지정 |
[정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귀휴(鄭龜休)가 강학을 위해 건립한 정자.
[개설]
정귀휴[1786~1852]의 본관은 영일, 자는 경서(景書), 호는 향양정(向陽亭)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학자로 벼슬에 뜻을 버리고 향양정(向陽亭)을 건립해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정귀휴의 저서로는 『향양정유고(向陽亭遺稿)』가 전한다. 묘소는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매곡마을에 있다. 매곡마을은 영천의 3대 양택지로 손꼽히는 길지로 마을에는 매산 정중기의 살림집인 영천 매산고택 및 산수정, 산천정 등이 있다.
[위치]
향양정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2리 매곡마을에 있다. 매곡마을은 임고면소재지에서 영천댐 방면으로 가다보면 댐 제당 직전 좌측에 있는 삼매리의 가장 안쪽 마을이다.
[변천]
향양정은 조선 정조 때 학자인 정귀휴가 자연을 벗 삼아 여생을 즐기고자 삼매리 매곡마을에 건립했다. 당초 1830년 매곡마을의 고택을 매입해 수리해 쓰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약 15년 뒤인 1844년에 재원이 마련되어 향양정을 건립한 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형태]
향양정은 경사진 산 사면을 이용해 대체로 방형인 토석 담을 두르고 남향으로 독립 배치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팔작지붕으로 평면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을 드린 다음 전면에 퇴를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 건물이다.
방 배면에는 벽장을 두고 건물 측면에는 쪽마루를 두었다. 퇴 앞으로는 계자각 난간을 설치한 헌함을 두고 하부로는 누하 공간을 마련했다. 누하공간의 양 방 쪽에는 함실아궁이가 있다. 창호는 청방 간에 삼분합문을 달아 공간 확장을 꾀했고 대청 뒤로는 쌍여닫이 판창을 내어 시원한 바람이 통하도록 했다.
방의 전면과 측면에는 쌍여닫이 세살창을 두었다. 특히 퇴의 양쪽에는 측면의 쪽마루로 연결되는 판문을 달고 전면 퇴 칸 우주[모서리 기둥]에서 처마 끝으로 차단벽을 설치했는데 이는 외부에서 직접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구조는 높은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워 퇴 칸 하부의 누하 공간을 만들었다.
누 상부에도 두리기둥을 세워 소로 수장으로 결구해 오량가의 가구를 완성했다. 퇴 칸을 제외한 나머지는 방주를 세웠다. 지붕은 홑처마의 팔작지붕으로 모서리 서까래는 마족연으로 처리했다. 건물의 각 모서리 추녀에는 활주를 세워 구조적 보강을 했다.
[현황]
향양정 정면 어칸 상부에는 ‘향양정(向陽亭)’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우 측방 전면 상부에 ‘양한당(養閒堂)’, 좌 측방 상부에 ‘유정실(幽靜室)’이란 현판을 달았다. 각 방의 명칭을 보아 양한당은 후학을 위한 강학당으로 이용하고, 유정실은 휴식 공간으로 이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지붕의 낡은 기와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의의와 평가]
향양정 건물은 건립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퇴 칸 측면의 기둥 밖으로 판벽을 설치한 예는 매산 정중기가 건립한 산수정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