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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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學臣 |
이칭/별칭 | 심부(心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종식 |
출생 시기/일시 | 1732년 2월 18일 - 조학신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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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00년 12월 21일 - 조학신 사망 |
거주|이주지 | 영천만취당 -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 |
묘소 | 조학신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 |
성격 | 무인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무인.
[가계]
조학신(曺學臣)의 본관은 창녕(昌寧)으로, 자는 심부(心夫)이며, 1732년(영조 8) 2월 18일에 태어나 1800년(정조 24) 12월 21일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조완(曺輐)이며, 증조는 증(贈) 악정(樂正) 조수창(曺壽昌), 조부는 증(贈) 승지(承旨) 조익천(曺翼天)이다. 아버지는 증(贈) 호조 참판(戶曹參判) 조선적(曺善迪)이며, 어머니는 증(贈) 정부인(貞夫人) 안동 권씨(安東權氏)로 권수창(權壽昌)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여강 이씨(驪江李氏)로 진사(進士) 이정중(李精中)의 딸이며, 둘째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용인 이씨(龍仁李氏)로 이정(李珽)의 딸이다. 슬하에 후사(後嗣)가 없어 족제 조석신(曺碩臣)의 아들 통덕랑(通德郞) 조현구(曺顯九)로 뒤를 이었다.
[활동 사항]
조학신(曺學臣)은 천성이 용맹하고 뛰어난 무예를 지녀 1759년(영조 35)에 재상(宰相)의 천거로 임금을 뵙게 되었다. 임금이 청룡도를 하사하고 사용해 보도록 한 후 “장하도다. 이 사람이여!”라 하고 사복내승으로 제수하고 특별히 내시(內試)를 보게 하고 집을 하사하였다.
그는 조정에서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밖으로는 큰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왕의 특명으로 수군병마사를 지냈다.
정조가 “능히 몸은 근심을 나눌 만하고 정성은 지극하니 가상 하도다”라 하였으며, 또한 고을 다스림을 성적으로 치면 으뜸인지라 친히 붓으로 말씀하시기를 “하찮은 은혜 무엇을 논하리? 더욱 성은(聖恩) 갚음을 도모하라”라 하였다.
다시 그의 성적을 매기니 으뜸이라 특별히 『규장각지』·『홍문관지』·『대전통편』·『규장전운』·『별군직제』·「명첩(名帖)」 각 1부와 길 잘들인 말[熟馬]과 비단으로 장식한 안장 등의 물건을 하사하였다. 후일 그의 부음(訃音)을 듣고 왕이 부의(賻儀)를 보내고 제문을 내렸다.
[묘소]
조학신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오길리에 임좌(壬坐) 향으로 있으며, 승지(承旨) 이돈우(李敦禹)의 갈문(碣文)이 있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평소 거주하던 주택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제175호로 지정된 영천 만취당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