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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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俊運 |
이칭/별칭 | 안수(安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조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855년 9월 5일 - 김준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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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김준운 신녕 지역에서 3·1 만세 운동 전개 |
몰년 시기/일시 | 1925년 6월 23일 - 김준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준운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02년 7월 - 김준운 추모비 건립 |
출생지 | 김준운 -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
거주|이주지 | 김준운 -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 |
활동지 | 김준운 - 경상북도 영천시 |
묘소 | 김준운 묘소 -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태곡등 결우양지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신녕예수교회 장로 |
[정의]
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김준운(金俊運)은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신녕 지역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가계]
김준운(金俊運)의 자는 안수(安叟)이며, 1855년 지금의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에서 태어나 1925년에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아버지는 김시훈(金始勛), 어머니는 의령 옥씨(宜寧玉氏) 사이의 장남이다.
[활동 사항]
김준운(金俊運)은 1919년 4월 6일 오후 1시경 당시 영천군 신녕면 완전동 부근 냇가에서 신녕공립보통학교 생도 황정수(黃正秀) 외 수십 명에게 4월 8일 신녕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거사하니 참가하도록 규합하였다.
같은 날 오후 9시경에 다시 왕산동교회를 방문하여 허석군(許石君)으로 하여금 신도들에게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도록 권유할 것을 부탁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묘소]
김준운의 묘소는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 태곡등 결우양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2년 7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신녕면 성환산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