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101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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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曺秉鎭 |
이칭/별칭 | 진원(進元)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천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조인호 |
출생 시기/일시 | 1891년 3월 1일 - 조병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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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 조병진 영천 지역의 3·1 만세 운동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61년 7월 16일 - 조병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2년 - 조병진 대통령 표창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5월 - 조병진 추모비 건립 |
출생지 | 조병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
활동지 | 조병진 - 영천 |
묘소 | 조병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993-1 |
소재지 | 추모비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동공원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본관 | 창녕 |
[정의]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조병진(曺秉鎭)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진원(進元)이며, 1891년 지금의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서 태어나 1961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조도승(曺度承)과 어머니 김해 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3남 중 2남으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조병진은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홍종현(洪鍾顯)·조재복(曺在福)·조주환(曺周煥) 등과 함께 영천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 만세 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붉은 깃발과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4월 12일 영천 장날 조병진은 동지들과 함께 장터로 나아가 1천여 명의 장꾼이 모여들자 당시 창구동 소재 영천공립보통학교 앞에서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같은 해 5월 8일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대구지방법원에서 태(笞) 90대를 받고 불구의 몸으로 출옥하였다. 출옥 후에는 지역의 후학들에게 독립 사상을 주입하는 등 계몽 운동에 앞장섰다.
[묘소]
조병진의 묘소는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993-1번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2005년 5월 영천항일운동선양사업회에서 영천시 화북면 오동공원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