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009
한자 政治
영어공식명칭 Politics
분야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경희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에서 권력과 권위를 획득·유지·행사하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조정·통합하는 총체적 활동.

[개설]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항상 희소한 자원을 획득하고 배분하는 과정을 둘러싼 갈등이 발생한다. 개개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지위가 평등하지 않은 데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이러한 불평등과 갈등·대립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며, 권력을 매개로 한 강제력 행사와 설득, 그리고 이익을 표출하고 집약하는 일련의 정치 과정을 통해 수행된다. 따라서 정치란 지배와 복종의 상호 과정이며, 권력의 획득·유지·행사를 둘러싼 모든 집단 간 투쟁, 그리고 이의 조정과 통합 과정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영덕군에서의 정치도 이러한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수행되어 오고 있다.

[영덕지역 민주정치의 기원과 변화]

영덕군 지역에서 근대 민주주의 정치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것은 1948년 실시된 5.10 총선거 때부터로 볼 수 있다. 이후 영덕군민은 6차례의 국민투표, 13차례의 대통령 선거, 3차례의 부통령 선거, 21차례의 국회의원 선거, 6차례의 전국 지방 동시 선거를 포함한 18차례의 지방자치 선거, 두 차례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선거와 한 차례의 대통령선거인단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1991년부터 주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하고 구성하는 기초의회[영덕군의회]와 광역의회[경상북도의회], 1995년부터는 주민의 직접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자치단체장[영덕군수, 경상북도지사]과 영덕군의회, 경상북도의회 등을 통해 지역의 주요 정책을 수립하고 심의·의결·집행하는 지방자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덕지역에서의 정치과정]

정치 과정의 주요한 요소는 선거민과 투표, 정당, 이익집단 및 사회단체들이다. 영덕군 지역에서의 투표는 1948년 제1대 총선부터 제2공화국 시기인 제4대 총선까지는 영덕군 단일 선거구로 시행된다. 이후 제3공화국 시기인 1963년 제6대 총선부터 1971년 제8대 총선까지는 청송군과 통합되어 영덕군·청송군 선거구가 되었고, 1972년 개정된 유신 헌법에 따라 1973년 치러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는 중선거구제로 실시되어 영덕군·청송군·울진군이 하나의 선거구가 되었다. 이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결과 태동한 제6공화국에서 1988년 치러진 제13대 총선에서부터는 다시 소선거구제로 회귀함으로써 영덕군은 청송군과 합쳐져 영덕군·청송군 선거구가 되었고, 영덕군·청송군 선거구는 1996년 제15대 총선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2000년 치러진 제16대 총선과 2004년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는 영덕군과 청송군·영양군이 하나의 선거구가 되었고. 2008년 치러진 제18대 총선부터는 영덕군과 영양군·울진군·봉화군이 한 선거구로 편성되었다. 2020년 4월 15일 치러진 제21대 총선에서는 영덕군과 군위군·의성군·청송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재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영덕군 지역주민의 정치 참여도는 대체로 높은 편이어서 투표율은 대개 전국 평균 또는 경상북도 평균보다 높게 나타난다. 정치적 관심은 농어촌 지역이라는 특성에 따라 특정 인물, 청년회의소, 의사회, 각종 농민단체, 새마을운동 단체, 애향회 등 직능, 친목 단체들이 주요 사회단체로 활동하면서 지역 여론을 형성하고, 필요한 경우 기초의회 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광역의회 의원, 국회의원 입후보자를 내어 당선시키기도 한다.

[영덕지역 정치의 특성]

영덕 지역에서의 역대 국회의원 선거 당선자는 고향에서 활동한 기업인이나 의사 출신 지역 인사의 비중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높은 편이며, 이들에 대한 선호도도 매우 높아 의사 출신 4선 의원이 2명이나 되며[문태준, 김찬우], 제2대 국회의원 한국원도 의사 출신이다. 그리고 제헌 의원이었던 오택열, 제3대 국회의원과 제4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김원규는 지역 기업인 출신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문태준의 경우 일제강점기 영덕군에서 광산 사업 등을 벌여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대표적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 문명기의 손자라는 점이다. 또 김찬우는 4선 국회의원이 되는 동안 민주한국당-신한민주당-민주자유당-통일국민당- 민주자유당-한나라당으로 당적을 계속 바꾸어 가고 있음을 볼 때 그가 정치적 소신보다는 ‘당선’에 더 치중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해방- 미 군정기- 대한민국 건국, 이승만 통치체제- 산업화- 민주화 과정에서 기업인, 또는 의료인들이 그들의 경제적·사회적 위치를 매개로 하여 지역의 정치 엘리트로 성장해 왔음을 보여 준다. 그렇지만 16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선거구가 영덕군 단독, 혹은 영덕군과 청송군 등으로 구성되어 상대적으로 유권자 수가 많은 영덕군 출신이 유리했지만, 2004년 치러진 제17대 총선에서부터 선거인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울진군과 봉화군이 선거구에 편입됨으로써 영덕 출신 국회의원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역 정치의 경우에도 영덕군은 1995년 6월 27일 자치단체장을 주민의 직접선거로 처음 선출했는데, 지금까지 치러진 8차례의 선거에서 단 3명이 단체장을 역임[3선 2명: 김우연, 김병목, 재선 1명: 이희진]할 정도로 재선의 비율이 높다. 그리고 초대와 제2대, 제3대 군수를 역임한 김우연은 관선 영덕군수를 역임한 관료, 제4대·제5대·제6대 군수를 역임한 김병목은 지역에서 중고교를 마친 지방공무원 출신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재선인 현재의 이희진 군수는 지역 국회의원들의 보좌관을 지낸 정치인 출신이다. 이는 지역 정치에서도 정치 엘리트로의 성장이 관료, 또는 영향력 있는 특정 정치인과의 교유(交遊)라는 신분적 위치를 매개로 하여 실현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영덕군민의 정치성향]

영덕 지역민의 정치 성향은 자유당-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국민의 힘으로 당명이 이어지는 특정 보수정당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 때문에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 시기에는 자유당, 제3공화국이 출범한 후에는 민주공화당에 압도적 지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이런 정치 성향은 유신체제가 시작되고,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로 바뀐 1970년대부터 다소 변화하기 시작해 1990년대 말까지는 지역에서 집권당 후보보다는 당시 야당이었던 민한당, 통일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가 더 높아진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은 실제로는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 때문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특정 보수정당에 대한 쏠림 현상은 이후 당시 3선 국회의원이었던 지역의 야당 정치 지도자가 1990년의 3당 합당 후 집권당 소속이 된 후부터 다시 두드러져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영덕군 지역민의 특정 보수 정당 지지 성향은 동일한 선거구인 영양군, 울진군, 봉화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참고문헌]
  • 『영덕군지』 (영덕군지편찬위원회, 2002)
  • 진덕규, 『한국 현대정치사 서설』(지식산업사, 2000)
  • 경상북도의회(https://council.gb.go.kr)
  • 영덕군의회(https://council.yd.go.kr)
  • 영덕군청(https://www.yd.go.kr)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통계시스템(http://info.ne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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