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3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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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德郡 |
영어공식명칭 | Yeongdeok-gun |
이칭/별칭 | 야성군,야시홀군,영덕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배상현 |
제정 시기/일시 | 통일 신라 시대 - 야성군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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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시기/일시 | 940년 - 야성군을 영덕군으로 개칭 |
관할 지역 | 영덕군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 |
[정의]
고려 시대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영덕군(盈德郡)은 통일 신라 시대 제정된 야성군(野城郡)이었는데, 고려 조에 영덕군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고려 후기 때 현령(縣令)을 파견하면서 영덕현(盈德縣)이 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야성군이 영덕군으로 개칭된 시기와 경위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고려 초에 개칭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후삼국 통일 후 지방 호족들의 기여도나, 새롭게 확보한 지역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지방 사회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개칭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57, 지리지의 영덕군 조에는 "야성군은 본래 고구려의 야시홀군(也尸忽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영덕군이다. 영현(領縣)이 2개이다"라고 했으며,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 영덕군 조에는 "영덕군은 본래 고구려 야시홀군으로, 신라에 와서 야성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 지금 이름으로 바꾸었다. 현종 9년[1018]에 내속(來屬)하였으며,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가, 다시 현령관(縣令官)으로 고쳤다"라고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5 영덕현 건치연혁에는 "본디 고구려의 야시홀군으로 신라에서 야성군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지금 이름으로 불렀으며, 현종 때 예주에 귀속시켰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고, 또 현령으로 고쳤다. 본조[조선]에서는 태종 15년에 바닷가에 있는 곳이라 하여 지현사(知縣事)를 두었다가 뒤에 도로 현령(縣令)으로 하였다."고 하였다.
[내용]
고려 시대 영덕군은 삼국 시대 고구려의 야시홀군이 있던 곳이었다. 이후 이곳이 신라에 편입되었고, 757년(신라 경덕왕 16) 야성군이 되었다. 그러다 고려 초에 영덕군으로 개칭하였다. 영덕군은 바닷가에 있었기에 해양 방위를 위하여, 1018년(현종 9) 방어사(防禦使)가 두어졌고 예주(禮州)[영해(寧海)]에 소속되었다. 고려 후기 감무가 파견되기 시작하였고, 이후 현령관이 파견되면서 읍호도 영덕현으로 개칭된 것으로 보인다.
[변천]
삼국 시대 고구려(高句麗)에 속하여 야시홀군(也尸忽郡)으로 불리다가 신라에 흡수된 뒤 경덕왕 대에 야성군으로 고쳐졌다. 고려 초에 영덕군이 되었으며, 1018년(현종 9)에 예주에 내속(來屬)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덕군의 존재는 고려 시대 중앙집권화 과정에서 지방행정구역이 개편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사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