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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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德晩槐軒 |
영어공식명칭 | Mangoeheon in Yeongdeok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4길 41-8[인량리 49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0년 - 영덕만괴헌 사랑채·대문채·우행랑채 일부 보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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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96년 - 영덕만괴헌 안채 및 좌우행랑채 기둥과 기단 교체공사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9월 23일 - 영덕만괴헌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9호 지정 |
현 소재지 | 영덕만괴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4길 41-8[인량리 493] |
원소재지 | 영덕만괴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4길 41-8[인량리 493] |
성격 | 전통 가옥 |
양식 |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7칸 |
측면 칸수 | 7칸 |
소유자 | 신구현 |
관리자 | 신구현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09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개설]
영덕만괴헌(盈德晩槐軒)은 1843년 신재수(申在洙)[1798~1855]가 매입한 후 거주한 전통 가옥이다. 신재수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희중(犧重) 또는 성숙(聖叔), 호는 만괴헌(晩槐軒)이다. 신재수는 영해 지역에 큰 흉년이 들자 이듬해 봄까지 굶주리는 지역민들에게 백미를 나누어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조정에서 가의부위(嘉義副尉)를 제수하였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마을 가장 뒤쪽의 산 밑 인량4길 41-8에 있다. 영양남씨, 영천이씨, 신안주씨 등이 자리 잡았다.
[변천]
영덕 만괴헌은 원래 야성정씨(野城鄭氏)의 고택으로 확실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다. 1815년(숙종 15) 정상기(鄭象璣)가 이수민(李壽民)에게 매도하였고, 이수민이 1843년(헌종 9) 신재수에게 다시 매도하였다. 신의영(申義泳)이 지금의 모습으로 확장·개축하였다. 1990년 사랑채·대문채·우행랑채의 일부를 보수하였고, 1996년 안채 및 좌우행랑채의 기둥과 기단 교체공사를 완료하였다.
[형태]
현재 정침만 있는데,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에 'ㅁ' 자형의 완결형 뜰집이다. 정침은 'ㄷ' 자형 안채와 그 전방에 중문간을 비롯해 안채보다 양단으로 1칸씩을 돌출된 '⊥' 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완전히 에워싼 폐쇄적인 완결형 평면 구성이다. 특히 중문간 우측의 사랑채는 기단의 높이를 조정하고 지붕도 별도로 구성해 독립된 영역성과 위계성을 확보하였다. 안채는 3칸 안마당에 면한 넓은 안대청을 둔 측면 2칸의 겹집형으로 좌측으로는 2칸통의 안방 뒤로 고방을, 우측으로는 상방과 통래 마루칸을 이루고 있다. 안방 앞으로는 2칸의 정지와 고방이 좌익사를, 상방 앞으로는 중방, 통래칸, 고방으로 우익사를 이루고 있다.
정지와 그 앞의 고방 위에는 상부 다락이 있다. 사랑채는 중문간을 경계해 높게 쌓은 자연석 기단 위에 아랫방, 윗방, 사랑마루를 일렬로 배열하고, 그 앞 전체에는 툇마루에 계자각 헌함을 설치해 전방의 넓은 영해들판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하였다.
사랑마루는 툇마루 사이에 분합들문을 달아 내부화하였고, 윗방 뒤로는 감실방 1칸을 안채 쪽으로 돌출 배치하였다. 안마당 중간에 중문간을 내고 그 좌측으로는 마구, 작은사랑방, 사랑마루가 차례로 있다. 중문간 앞 마당에는 낮은 담을 쌓아 방문하는 사람들이 안채 내부를 잘 볼 수 없도록 차면담을 두었다. 안채의 구조는 네모기둥에 안대청에만 고주를 사용한 2고주 5량가, 주상부는 민도리형식이다. 사랑채는 모두 네모기둥을 사용한 3량가인데, 전면 툇기둥에만 직절익공 형식으로 그 외 민도리형식과 차별성을 두었다. 만괴헌에서 동쪽으로 20~30m 떨어진 산 밑에는 신재수가 마을의 다른 종택처럼 별당으로 지은 만괴정이 있다.
[현황]
1988년 9월 23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말경에 확장·개축한 상류주택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 상류주택의 특성인 완결형 뜰집인 점, 안마당에 면해 겹집의 안대청이 배열된 안채의 중부형 평면 구성, 안방 뒤에 집안 물건을 수납하는 고방을 둔 점, 상방 앞에 통래 마루칸을 둔 점, 정침 전면에 배치된 사랑채는 구조 및 형태와 팔작지붕으로 안채보다 높은 격식과 독립적 영역성을 갖춘 점, 중문간 앞에 안채의 내밀한 모습을 볼 수 없게 차면담을 설치한 점이 특징이다. 비록 19세기 말에 건축된 주택이지만 이전 시기에 건립된 이 지역 특유의 상류주택과 건축적 동질성을 추구하고자 한 것에서 주택의 변천사를 밝힐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