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1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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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仁良里 |
영어공식명칭 | Illyang-ri |
이칭/별칭 | 잉량화,인량,인량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명은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인량리는 영덕군 창수면의 법정리로서, 행정리로는 인량1리·인량2리가 있다. 자연 마을로 강학소·사당골·세원모치·아랫나라골·웃나라골 등이 있다.
[명칭 유래]
인량리(仁良里)의 옛 이름은 잉량화(仍良火)였는데 1610년(광해군 2) 인량(仁良)으로 개칭하였다. 예로부터 명현거유(名賢巨儒)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인량’이라고도 하였다. 자연 마을 명칭인 나라골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하나는 뒷산의 지형이 학이 날아가는 모습 같다고 하여 나래골·익동(翼洞)·비개동(飛蓋洞)이라 하였던 것이 음이 변하여 '나라골'이 되었고, 한자로 '국동(國洞)'이라 하였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고대 우시국(于尸國)[지금의 영덕]의 도읍이어서 나라골·국동 등으로 불렸다.
[형성 및 변천]
인량리는 조선시대 영해도호부의 동리였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해군 서면에 속하였으며, 이때 인상동(仁上洞)·인하동(仁下洞)으로 나뉘었다. 1914년 3월 1일 인상동·인하동을 통합하여 인량동이 되고 창수면으로 편제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洞)을 리(里)로 개칭하면서 오늘에 이른다.
[자연환경]
인량리 북쪽으로는 등운산맥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남쪽에는 송천이 흐르며 마을 앞에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동산[95.8m]이 있어 해풍을 막아준다.
[현황]
인량리의 2020년 말 면적은 5.06㎢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142가구에 230명[남 115명, 여 115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구체적으로 인량1리에는 51세대에 93명[남 44명, 여 49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인량2리에는 91세대에 137명[남 71명, 여 66명]이 살고 있다. 인량리는 동쪽으로 동산(東山)을 넘어 병곡면 사천리, 서쪽으로 신기리·가산리, 남쪽으로는 송천을 건너면 영해면 원구리, 북쪽으로 등운산과 접해 있다. 인량리는 영해에서 4㎢, 창수면 소재지에서 약 2㎢ 떨어져 있다.
인량리 마을에 자리한 영덕 충효당(忠孝堂)은 재령이씨(載寧李氏) 영해파(寧海派) 종택으로, 1984년 1월 10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또한,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1호인 인량리 용암종택(龍巖宗宅), 경상북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된 갈암종택(葛庵宗宅).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만괴헌(晩槐軒), 지족당(知足堂), 우계종택(愚溪宗宅), 강파헌 정침(江坡軒 正寢), 정담정려비(鄭湛 旌閭碑)가 있어, 인량리가 전형적인 유교 마을임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인량리의 작은 도롱골과 큰 도롱골 사이에는 갈암 이현일 묘가 있다. 존재 이휘일, 문경공 갈암 이현일을 배향하였다가 1868년 철폐된 인산서원 터가 있다. 뒷골에는 왕바우[王巖]라 불리는 바위가 있는데, 바위에 새겨진 '왕암(王巖)'이라는 글자는 이휘일이 썼다고 한다. 마을 앞 송천 변을 따라 넓은 평야가 있어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마을 입구 동쪽에는 동산 끝자락에 인양지가 있어 농수로 이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