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6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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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涵 |
영어공식명칭 | Lee Ham |
이칭/별칭 | 양원(養元),운악(雲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재현 |
출생 시기/일시 | 1554년 - 이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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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88년 - 이함 생원시 입격 |
활동 시기/일시 | 1607년 - 이함 의령현감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09년 - 이함 문과 급제 |
몰년 시기/일시 | 1632년 - 이함 사망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재령 |
대표 관직 | 의령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이함(李涵)[1554~1632]은 1609년(광해군 1) 문과에 급제했으며, 의령현감(宜寧縣監) 등을 지냈다.
[가계]
이함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양원(養元), 호는 운악(雲嶽)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 이맹현(李孟賢)이고, 할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애(李璦)이며, 아버지는 이은보(李殷輔)이다. 부인은 진성이씨 이희안(李希顔)의 딸이다. 아들은 이시청(李時淸)·이시형(李時亨)·이시명(李時明)·이시성(李時成)이다.
[활동 사항]
이함은 1554년(명종 9)에 경상도 영해도호부 인량리 집에서 이은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황응청(黃應淸)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588년(선조 21)에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량미를 조달하는 데에 공을 세웠고, 이후 1599년에 천거로 김천도 찰방(金泉道察訪)이 되었다.
1600년(선조 34)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답안에 장자(莊子)의 말을 인용하였다 하여 급제가 취소되었다. 그 뒤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 풍저창주부(豐儲倉主簿) 등을 역임하였고, 1607년에는 외직으로 의령현감에 제수되었다. 1609년에 다시 문과에 급제했지만, 정치의 어지러움을 보고 귀향하여 출사하지 않았다.
이함이 살던 영해 인량리는 풍수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출병한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은 이 지역에서 큰 인물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여러 곳의 지맥(地脈)을 끊었다. 이함이 낙향하여 먼저 한 일이 이여송이 끊은 지맥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또한, 이함은 이애가 인량리에 지은 종택을 원래 위치에서 조금 뒤로 옮기고 별당의 이름을 ‘충효당(忠孝堂)’이라 하여 명나라 황제의 필적을 복각(復刻)해서 걸어두었다. 만년에 한가하게 거처하면서 후학 양성에 힘쓰기 위해 정자를 지었는데, 대나무 숲 사이에 건물이 있다고 하여 ‘죽리관(竹裡館)’이라고 이름하였다.
1632년(인조 10)에 임종을 앞두고 후손들에게 한 유언이 전해진다. 유언의 마지막에는 “무릇 나의 자손들은 선현의 교훈을 잊지 말고 학문에 힘쓰며 이익을 좇지 말라. 충성과 신의를 대대로 전한다면 내가 비록 죽더라도 자손들이 있다 하겠다.”라고 자손들에게 당부하였다.
[학문과 저술]
문집으로 『운악집(雲嶽集)』 2권이 전한다. 후손인 이현발(李鉉發)이 1862년(철종 3)에 간행하였다.
[상훈과 추모]
손자인 이현일(李玄逸)의 현달로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