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6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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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得仁 |
영어공식명칭 | Baek Deukin |
이칭/별칭 | 영중(榮仲),두암(杜庵)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570년 - 백득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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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27년 - 백득인 사망 |
출생지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경상도 영해도호부 인량리] |
부임|활동지 |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전라도 장수현] |
묘소|단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모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대흥(大興) |
대표 관직 | 장수현감(長水縣監)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백득인(白得仁)[1570~1627]은 장수현감(長水縣監)을 지냈으며 선정을 베풀었다.
[가계]
백득인의 본관은 대흥(大興), 자는 영중(榮仲), 호는 두암(杜庵)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백형(白珩), 할아버지는 참봉(參奉) 백문보(白文輔)[1303~1374],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백수렴(白受廉)[?~1622]이다. 어머니는 인의(引儀) 김호(金浩)의 딸 수안김씨(遂安金氏)이며, 부인은 첨지중추부사 오민수(吳敏壽)의 딸 함양오씨(咸陽吳氏)이다.
[활동 사항]
백득인은 백인국(白仁國)[1530~1613]에게 학문을 배웠다. 장수현감 재임 중 선정을 베풀어 고을 백성들이 백득인의 공덕(功德)을 기려 동비(銅碑)를 세웠다. 광해군(光海君)[재위 1608~1623] 연간 혼란한 정치 상황에서 상소를 올려 간(諫)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낙향하였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 불모동(佛母洞)에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