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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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尙周 |
영어공식명칭 | Nam Sangju |
이칭/별칭 | 성보(聖輔),한계(閒溪)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26년 - 남상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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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79년 - 남상주 종사랑 승품 |
활동 시기/일시 | 1688년 - 남상주 사망 |
거주|이주지 | 원고리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
거주|이주지 | 한계초려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
묘소|단소 | 니전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영양 |
대표 관직|경력 | 종사랑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개설]
남상주(南尙周)[1626~1688]는 영덕 출신의 처사형(處士型) 학자로서, 유고로 「한계유고(閒溪遺稿)」를 남겼다.
[가계]
남상주의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성보(聖輔), 호는 한계(閒溪)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군기시판관(軍器寺判官)을 지낸 남의록(南義祿), 할아버지는 진사 남경훈(南慶薰), 아버지는 진사(進士) 남길(南佶), 어머니는 첨정(僉正)을 지낸 신효남(申孝南)의 딸 영해신씨(寧海申氏), 부인은 진사 조정형(趙廷珩)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와 백성립(白成立)의 딸 대흥백씨(大興白氏)이다.
[활동 사항]
남상주는 어린 시절부터 경사(經史)에 두각을 나타내어 향시(鄕試)에 여러 차례 합격하였다. 그러나 회시(會試)에는 번번이 낙방하였다. 자손들이 차례대로 급제하자, 과거에 더 이상 뜻을 두지 않고 향촌에서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1679년(숙종 5) 종사랑(從事郎)에 올랐다. 1683년에는 거처를 원구리에서 니전(泥田)으로 옮겼다. 새 거처에 오두막을 엮고, ‘한계초려(閒溪草廬)’라는 당호를 지었다.
[학문과 저술]
남상주가 쓴 시(詩)·서(書)·축문(祝文)·제문(祭文)·명(銘)·묘지명(墓誌銘)과 부록으로 구성된 2권의 「한계유고」가 『영산가학(英山家學)』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니전에 묘소가 있다. 조덕린(趙德鄰)이 묘갈명(墓碣銘), 남노명(南老明)이 묘지명(墓誌銘)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