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749 |
---|---|
한자 | 金成夏 |
영어공식명칭 | Kim Seongha |
이칭/별칭 | 기성(器成),서암(棲庵),충선(忠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병훈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가계]
김성하(金成夏)[?~?]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기성(器成), 호는 서암(棲庵)이다. 부친은 교위 김대원(金大元)이며, 형은 김기하(金器夏)이다.
[활동 사항]
김성하는 풍채가 컸으며, 일찍이 문장을 깨우쳐 유년기에는 경주의 우계당(友溪堂) 김순(金洵)에게 학문을 배웠다. 김순은 김성하를 보고 “참으로 간성(干城)할 재목이다.”라고 하였다. 영덕 서쪽 해월봉 아래에 집을 짓고 살면서 ‘서암’이라고 편액하였으며, 『육도삼략(六韜三略)』 등의 책을 읽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형 김기하와 함께 함께 창의하였다. 울산의 도산성(島山城) 전투에 참전하여 박홍립(朴仜立)과 함께 공을 세웠다. 또한 의병진을 모아 충청남도 당진에서 이안국(李安國)·황희안(黃希安)과 함께 왜군 100여 명을 사살하였다. 군공으로 선략장군(宣略將軍)에서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승급하였으며, 특별히 부산첨사(釜山僉使)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상훈과 추모]
김성하는 1605년(선조 38) 선무원종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인조대에 병조참의에 증직되었다가 참판에 올랐다. 효성과 충절에 의거하여 ‘충선(忠宣)’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