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333 |
---|---|
한자 | 南鵬翼 |
영어공식명칭 | Nam Bungik |
이칭/별칭 | 자거(子擧),입천(卄川),회수(晦叟)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641년 - 남붕익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673년 - 남붕익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77년 - 남붕익 서학훈도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679년 - 남붕익 영산현감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687년 - 남붕익 사망 |
출생지 | 경상도 영해도호부 괴시리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
거주|이주지 | 영양남씨괴시파종택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1길 18-3[괴시리 333] |
거주|이주지 | 영해입천정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호지마을길 45-10[괴시리 5] |
부임|활동지 | 영산현 -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
묘소|단소 | 탄동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영양 |
대표 관직 | 영산현감 |
[정의]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개설]
남붕익(南鵬翼)[1641~1687]은 1673년(현종 14) 문과에 급제했으며, 예조좌랑(禮曹佐郎)·영산현감(靈山縣監) 등을 지냈다.
[가계]
남붕익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괴시리(槐市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자거(子擧), 호는 입천(卄川)·회수(晦叟)이다. 아버지는 사재감참봉(司宰監參奉)을 지낸 남두원(南斗遠), 어머니는 주부(主簿)를 지낸 오경직(吳敬直)의 딸 낙안오씨(樂安吳氏), 조부는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를 지낸 남벌(南橃)이며, 증조부는 장사랑(將仕郎) 남정방(南靖邦)이다. 부인은 박지복(朴知復)의 딸 영인(令人) 무안박씨(務安朴氏)이다.
[활동 사항]
남붕익은 일찍이 권경(權璟)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673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1677년(숙종 3) 서학훈도(西學訓導)를 시작으로 성균관학유(成均館學諭)·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 1678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 1679년 예조좌랑을 거쳐 영산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영산현감 재임 중 고을의 병폐를 바로잡는 등 여러 치적을 남겼다. 1680년 경신환국 이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입천정(卄川亭)을 짓고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며 만년을 보냈다.
[학문과 저술]
남붕익이 지은 시(詩)·서(序)·제문(祭文)과 부록을 엮은 「입천정일고(卄川亭逸稿)」가 『괴장세고(槐庄世稿)』에 수록되어 있다.
[묘소]
남붕익의 묘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수리 탄동(炭洞)에 있다. 조술도(趙述道)가 묘갈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