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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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浮石寺圓融國師碑 |
영어공식명칭 | Stele for State Preceptor Wonyung at Buseoksa Temple |
이칭/별칭 | 원융국사비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54]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박병선 |
건립 시기/일시 | 1054년 - 부석사원융국사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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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79년 1월 25일 - 부석사원융국사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부석사원융국사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현 소재지 | 부석사원융국사비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54] |
원소재지 | 부석사원융국사비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북지리 154] |
성격 | 탑비 |
관련 인물 | 원융국사 |
재질 | 석재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높이 173㎝|너비 110㎝|두께 15㎝ |
소유자 | 부석사 |
관리자 | 부석사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부석사 경내에 있는 고려 전기 승려 원융국사의 탑비.
[개설]
부석사원융국사비(浮石寺圓融國師碑)는 부석사에 세워진 고려 전기 탑비이다. 이수와 귀부를 갖추고 있으나 비신은 일찍이 무너져 아랫부분이 파손되었고, 비문 판독이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원융국사(圓融國師)[964~1053]는 고려 초의 명승으로 속성은 김씨(金氏), 휘(諱)는 결응(決凝), 자는 혜일(慧日)이다. 12세에 출가하여 용흥사(龍興寺)에서 승려가 되었고, 복흥사(福興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으며, 28세에 대덕(大德)[덕이 높은 승려를 가리킴]이 되었다. 1041년(정종 7) 부석사로 들어와 화엄종의 법통을 이어받았고, 1053년(문종 7) 4월에 부석사에서 입적하였다.
[건립 경위]
1053년 원융국사가 입적하자, 문종은 ‘원융(圓融)’이라는 시호를 내렸으며, 1054년 원융국사를 기리기 위하여 원융국사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부석사원융국사비는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에 소재한 부석사 동쪽 500m 지점에 있다.
[형태]
부석사원융국사비의 비신 높이는 173㎝, 너비는 110㎝, 두께는 15㎝이다. 비문은 고청(高聽)이 짓고 글씨는 임호(林顥)가 썼다. 전액도 임호가 썼다고 하는데, 고청이나 임호의 사적은 전하지 않는다. 글씨는 자경 2㎝의 해서로 구양순체를 따랐으나, 좁고 긴 짜임새나 골격 위주의 수척한 획은 독특하다.
부석사원융국사비는 비신 중간 부분에 왼쪽에서 비스듬히 아래로 갈라진 틈이 넓게 있고 오른쪽 아랫부분은 많이 파손되었으며 비신 둘레로 파손된 부분이 적지 않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대체로 비문을 판독할 수 있을 만큼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에 비문 전체가 실려 있어 내용 파악은 가능하다. 비석은 바닥돌 위에 거북 받침을 마련하여 비신을 세운 후 머릿돌을 얹은 구조로, 거북 받침은 원래의 것이 아니며 비신은 깨어지고 갈라져 있는 것을 이어 붙인 것이다. 바닥돌은 옆면에 안상(眼象)을 옅게 새기고 그 안에 꽃무늬를 두었다. 거북 받침돌은 많이 닳긴 하였으나 조각 솜씨가 훌륭하며, 머리는 용머리화 되었으나 마치 돌사자처럼 보인다. 등에는 선명한 6각 무늬가 덮여 있으며, 무늬마다 ‘왕(王)’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금석문]
부석사원융국사비 비문에는 원융국사의 행적과 추모 내용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원융국사는 명망 있는 가문에서 태어나 12세에 출가하여 28세에 승과에 급제하고, 덕종이 개성 묘지사(妙智寺)에 주석하게 했다고 한다. 이어 정종이 왕사로 책봉하고, 문종이 국사로 책봉하였다. 정종 때는 기우제를 주관하였으며, 만년에는 부석사에 은퇴하여 대장경 사경(寫經)도 시행하고 입적했다는 행적을 기술하였다. 특히 화엄종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의 불상 배치가 의상의 창건 당시의 구도임을 확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도들이 수좌 1인, 삼중대사 5인, 대사 1,438인 등으로 많았다 하나 특이하게 음기가 아닌 비문 본문의 끝에 언급하고 음기의 존재는 알려지지 않는다. 비명의 제일 뒤에 ‘수비원(守碑院)’이라 하여 탑전(塔殿)과 비슷한 비를 수호하는 건물을 두고 3인의 문도가 지키도록 하였다는 것이 이채롭다.
[현황]
부석사원융국사비는 현재 정면 3칸, 측면 1칸의 보호각에 봉안되어 있다. 부석사원융국사비는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