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66 |
---|---|
한자 | 安景恭 |
영어공식명칭 | An Gyeong-gong |
이칭/별칭 | 손보(遜甫),양도(良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위은숙 |
출생 시기/일시 | 1347년 - 안경공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365년 - 안경공 국자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372년 - 안경공 산원 보임 |
활동 시기/일시 | 1373년 - 안경공 낭장 겸 사헌규정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76년 - 안경공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382년 - 안경공 합주 사노들의 반란 집압 |
활동 시기/일시 | 1390년 - 안경공 좌천 |
활동 시기/일시 | 1391년 - 안경공 예문관제학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92년 - 안경공 좌대언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92년 - 안경공 익대개국공신 3등 녹훈 |
활동 시기/일시 | 1393년 - 안경공 도관찰출척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94년 - 안경공 흥녕군 책봉 |
활동 시기/일시 | 1406년 - 안경공 한성부판윤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10년 - 안경공 판개성부사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11년 - 안경공 탄핵 |
활동 시기/일시 | 1416년 - 안경공 집현전대제학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16년 - 안경공 흥녕부원군 책봉 |
몰년 시기/일시 | 1421년 - 안경공 사망 |
거주|이주지 | 안경공 거주지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
묘소|단소 | 안경공 묘소 - 서울특별시 금천구 독산로36나길 63[시흥동 산126-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순흥(順興) |
대표 관직 | 경상도안렴사|좌대언|판한성부사|집현전대제학 |
[정의]
조선 전기 영주 출신의 문신.
[개설]
안경공(安景恭)[1347~1421]은 고려 말 경상도안렴사, 좌대언을 지냈으며, 조선왕조 개창 후에는 판한성부사, 집현전대제학 등을 지냈다. 왕조 개창에 공이 있어 익대개국공신에 녹훈되었다.
[가계]
안경공의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손보(遜甫), 시호는 양도(良度)이다. 할아버지는 첨의찬성사를 지낸 안축(安軸)[1282~1348], 아버지는 문하찬성사를 지낸 안종원(安宗源)[1325~1394], 어머니는 우상시를 지낸 김휘남(金輝南)의 딸이며, 부인은 문정공 정사도(鄭思道)[1318~1379]의 딸 의정택주(懿靜宅主) 오천정씨(烏川鄭氏)이다. 아들은 호조판서와 보문각대제학을 지낸 안순(安純)[1371~1440]이다.
[활동 사항]
안경공은 1356년(공민왕 4) 국자감시에 합격하였으며, 1372년(공민왕 21) 산원에 임명되었다. 이후 황주목사로 부임하였는데, 재임 중 선정을 베풀었다고 한다. 1376년(우왕 2) 의영고부사로 있으면서 문과에 응시해 급제하였다. 그 후 전리사좌랑, 전법사좌랑, 사헌지평, 예의정랑, 삼사좌윤을 거쳐, 1382년 경상도안렴사로 부임하였다. 이때 합주[지금의 경상남도 합천]의 사노(私奴)들이 스스로 검대장군(劍大將軍), 초군장군(抄軍將軍), 산군장군(散軍將軍)이라 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는데, 안경공이 군사를 일으켜 진압하였다. 이후 비순위상호군 겸 판통례문사 진현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얼마 후 판전교시사 지제교 예의판서를 거쳐 전법판서에 올랐다. 1390년(공양왕 2) 윤이(尹彛), 이초(李初)와 연루된 사람들을 두둔했다는 이유로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탄핵하였지만, 오히려 공양왕에 의해 좌천당하였다. 1391년 예문관제학에 임명되었고, 1392년 좌부대언을 거쳐 좌대언에 올랐다. 1392년(태조 1) 조선 건국에 참여하여 중추원도승지에 임명되었으며, 익대개국공신 3등에 녹훈되었다. 1393년 사헌부대사헌 겸 도평의사사 보문각학사에 올랐고, 1393년 전라도관찰출척사로 나아갔다. 1394년(태조 3)에는 흥녕군(興寧君)에 책봉되었다. 1406년(태종 6) 판공안부사와 판한성부사에 임명되었으며, 1410년 판개성부사가 되었다. 1411년 개국공신 조영무(趙英茂)[?~1414], 조온(趙溫)[1347~1417], 정탁(鄭擢)[1363~1423], 유창(劉敞)[?~1421], 조견(趙狷)[1351~1425], 한상경(韓尙敬)[1360~1423] 등과 더불어 주살된 정도전(鄭道傳)[1342~1398], 남은(南誾)[1354~1398]의 죄를 감해 줄 것을 청원했다가 대간들의 탄핵을 받았다. 1416년(태종 16) 보국숭록대부 집현전대제학에 임명되었으며, 흥녕부원군(興寧府院君)에 진봉되었다.
[묘소]
안경공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의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74호]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안경공은 1392년 조선 건국에 참여한 공으로 익대개국공신에 녹훈되었고, 사후 ‘양도’라는 시호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