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5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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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夢尹 |
영어공식명칭 | An Mong-yun |
이칭/별칭 | 상경(商卿)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순한 |
출생 시기/일시 | 1571년 - 안몽윤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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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599년 - 안몽윤 부장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12년 - 안몽윤 통정대부 승계 |
활동 시기/일시 | 1618년 - 안몽윤 첨지중추부사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22년 - 안몽윤 자산군수 재임 |
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안몽윤 진무공신 3등 녹훈 및 순양군 책봉 |
활동 시기/일시 | 1626년 - 안몽윤 부총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43년 - 안몽윤 경상우병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46년 - 안몽윤 자헌대부 가자 및 도총관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48년 - 안몽윤 포도대장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50년 - 안몽윤 사망 |
수학지 | 안몽윤 수학지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
묘소|단소 | 안몽윤 묘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순흥(順興) |
대표 관직 | 함안군수|통정대부|포도대장|지중추부사 |
[정의]
조선 후기 영주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개설]
안몽윤(安夢尹)[1571~1650]은 음보로 군직에 나아갔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을 토벌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진무공신에 녹훈되었다.
[가계]
안몽윤은 문성공 안향(安珦)[1243~1306]의 후손으로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상경(商卿)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증 이조참판 안경률(安景嵂)[?~1557], 할아버지는 증 이조판서 안종도(安宗道)[1522~1600], 아버지는 의정부좌찬성을 지낸 순계군 안세복(安世復)이다. 어머니는 광주김씨(光州金氏)로 정경부인에 추증되었는데, 증 이조참판 김구(金絿)의 손녀이자 진사 김균(金鈞)의 딸이다. 부인은 청풍군수를 지낸 이덕순(李德淳)의 딸인 증 정경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활동 사항]
안몽윤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군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고,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이 되었다. 1599년에 부장으로 창덕궁을 지켰으며,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남포현감, 옥구현감, 안동판관 등의 외직을 역임하였다. 재임 시 치적이 있어 함안군수로 승진하고, 1612년(광해군 4) 통정대부에 올랐다.
안몽윤은 1618년 첨지중추부사, 1622년 자산군수가 되어 조방장(助防將)을 겸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 때에는 군량 보급과 안현(鞍峴)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1626년 부총관에 제수되었고, 이후 김해부사, 중화부사, 전라수사 등을 거쳐 1643년(인조 21) 경상우병사로 부임하였다. 1646년 자헌대부에 올라 도총관을 겸하였으며, 1648년(인조 26) 포도대장, 1649년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다.
[학문과 저술]
안몽윤은 선대에 영주 지역을 떠나 근기지방으로 이주하였지만, 관향이 있는 영주 지역을 오가며 학문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602년(선조 34) 영주 오계서당(汚溪書堂)[지금의 오계서원(汚溪書院)]에서 정구(鄭逑)[1543~1620]와 장현광(張顯光)[1554~1637]을 좌장으로 해서 강회가 개최되었는데, 당시 한양에 거주했던 안몽윤도 영주 지역으로 내려와 참석하는 등 지역 유림과 활발히 교유하였다.
[묘소]
안몽윤의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