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0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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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養院 |
영어공식명칭 | Anyangwon(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명륜길41번길 21-1[하망동 135-1] |
시대 | 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
집필자 | 박병선 |
[정의]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에 있는 한국불교정토종 소속 사찰.
[개설]
안양원(安養院)은 통일신라시대 사찰인 옛 정토사(淨土寺) 자리에 1953년 새롭게 창건되었다. 안양원에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인 석조여래좌상, 조선 후기 및 근대에 제작된 영주 안양원 독성탱화 및 신중탱화, 중국 청나라 때 조성된 오백나한상 등이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안양원은 1953년에 창건되었지만, 창건 연대가 짧음에도 불교사적으로 가치 있는 유물과 유적이 확인되는 사찰이다. 안양원이 있는 절터는 통일신라시대의 정토사 터였다고 한다. 정토사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조신(調信)이 꿈을 꾸고 난 뒤에 인간의 욕망이 덧없음을 깨닫고 사재를 털어 지은 절”로 기록되어 있다. 옛날부터 절골로 불린 곳이며, 또 ‘사례(寺禮)골’이라는 지명이 구전된 까닭도 정토사와 무관하지 않다. 통일신라시대 조신이 정토사를 창건하였고, 그 정토사가 바로 안양원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안양원 신도회에서 ‘조신대사유허비(調信大師遺墟碑)’를 경내에 건립하였다.
안양원의 주지 안경우는 1953년에 안양원을 창건한 이후, 2018년 현재까지 주지로서 소임을 맡고 있다. 안양원은 1962년 10월 8일에 안경우가 ‘대한불교조계종’으로부터 안양원 주지 임명을 받았으나, 8년 뒤인 1970년 12월 10일 사찰을 ‘한국불교태고종’에 등록하였다. 그리고 2002년 9월 13일에 사단법인 ‘한국불교금강선원’에 등록하였다가, 2003년 11월 17일 재단법인 ‘한국불교태고원’에 등록하였다. 2018년 현재 ‘한국불교정토종’에 등록하였다.
1953년 창건 직후 경우당을 신축하고, 1950년대 말에 연암당과 수광전을 신축하여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후 1980년대에 태고루를 봉화군에서 옮겨왔으며, 중심 불전인 법왕궁을 1985년에 신축하였다. 2000년에 오백나한전을 신축하고, 2015년에 범종각·단군전·이사회의실을 신축하였으며, 2018년에는 평화정을 신축하였다.
[활동 사항]
안양원은 현재 사단법인 한국불교정토종 소속 사찰이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안양원의 당우는 법왕궁·오백나한전·경우당·수광전·범종각·태고루·연암당·단군전·고불각·평화정·이사회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도심의 사찰이라 전각들이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안양원의 중심 불전인 법왕궁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의 2층 건물이다.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좌우에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하는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독성탱화와 신중탱화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오백나한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구조의 2층 건물로 오백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경우당은 주지실로 사용하고 있으며, ‘철탄산안양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수광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며, 범종각은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의 맞배지붕 구조인데 범종과 큰 북이 매달려 있고 ‘평화북집’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태고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은 신도회관으로 사용하고 2층은 17세기 말경에 건축된 봉화군 해저리 김씨네 사당을 옮겨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기와집 형태의 연암당은 요사로 사용하고 있으며, 단군전에는 단군 초상화가 걸려 있다. 안양원 입구 쪽 고불각에는 불두가 없는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관련 문화재]
안양원에는 지정문화재로 조선 후기 불화인 영주 안양원 독성탱화 및 신중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36호]가 있다. 독성탱화는 1812년(순조 12)에 조성된 불화로서 도상의 착의 등에서 19세기 고승들의 진영과 유사한 표현을 엿볼 수 있으며, 신중탱화는 1906년(광무 10)에 제작된 불화로서 그림의 상태가 양호하다.
지정문화재는 아니지만 중요한 사찰 문화재로는 중국 청나라 때 조성된 오백나한상이 있다. 옥돌 원석 하나씩으로 조성된 나한상과 나무뿌리로 만든 좌대가 걸작이다. 1603년(선조 36) 봄에 판각한 ‘영지사 극락전 중수기’ 현판과 1633년(인조 11) 판각한 ‘오지산 영지사 내원기’ 현판도 있다. 또 1812년에 제작된 민화풍의 석사자가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불두가 없는 석조여래좌상도 있다. 종각 기둥의 주춧돌로 사용한 연화무늬의 주춧돌 등 여러 개 석조물은 옛 정토사의 유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