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401267 |
---|---|
한자 | 竹溪別曲 |
영어공식명칭 | Jukgyebyeolgok(Literary Writing)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
유형 | 작품/문학 작품 |
지역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권미숙 |
저자 생년 시기/일시 | 1282년 - 안축 출생 |
---|---|
저술|창작|발표 시기/일시 | 1348년 - 「죽계별곡」 창작 |
저자 몰년 시기/일시 | 1348년 - 안축 사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740년 - 「죽계별곡」 『근재집』 권2 수록 |
편찬|간행 시기/일시 | 1803년 - 「죽계별곡」 『죽계지』 수록 |
배경 지역 | 「죽계별곡」 시비 -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
성격 | 경기체가 |
작가 | 안축 |
[정의]
고려 후기 영주 출신의 문신 안축이 지은 경기체가 형식의 작품.
[개설]
「죽계별곡(竹溪別曲)」에는 안축(安軸)[1282~1348]이 고향 순흥의 아름다운 산수와 미풍 속에서 흥에 젖어 있는 모습을 읊고 있다. “경(景) 긔 엇더하니잇고”라는 구절, 혹은 “경기하여(景幾何如)”라는 말이 되풀이되는 것을 따서 ‘경기체가(景幾體歌)’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죽계별곡」은 안축의 문집인 『근재집(謹齋集)』 권2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현 소수서원] 관련 자료를 엮은 『죽계지(竹溪誌)』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죽계’는 순흥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죽계천을 가리킨다.
「죽계별곡」의 창작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가사에 등장하는 충목왕의 태(胎)를 안장한 해가 안축이 세상을 떠나던 해인 1348년(충목왕 4)의 일이기 때문에, 안축이 일생을 마무리하면서 지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구성]
「죽계별곡」은 한문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모두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고향 순흥에 대한 자랑, 2장에서는 누각과 정자에서 기녀들과 어울려 노는 광경, 3장에서는 향교의 스승을 맞는 광경, 4장에서는 기녀들에 대한 그리움, 마지막 5장에서는 태평성대를 즐기자는 내용을 노래하고 있다.
[내용]
제1장에서는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흥하는 천 년 동안 한결같은 풍류를 이어온 고장이며, 다른 곳에는 없는 왕자의 태를 갈무리한 곳이라고 순흥 지역을 자랑하였다. 거기에다 안축이 청백리의 행실로 원나라와 고려 두 나라에서 벼슬했기에 산수의 격조를 더 높였다고 했다. 고유명사를 계속 나열하다시피 하고, 설명은 생략하고서도 그런 생각을 잘 나타내, 경기체가가 신흥 사대부의 기백을 과시하는 노래임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제2장에서는 사찰의 누각이나 정자를 찾아서 기녀들과 어울려 노는 광경을 다루었다.
제3장에서는 향교에서 글을 배워 유학을 익히고 철 따라 시를 읊고 음률을 즐기는 광경을 자랑하며, 향교의 스승을 보내고 맞는 광경을 곁들였다. 제4장에서는 기녀들과 어울려 놀다가 헤어져서 멀리 두고 생각하는 심정을 읊었다. 제5장에서는 첫째 줄에 봄의 정경, 둘째 줄에 여름의 형상, 셋째 줄에 가을, 넷째 줄에 겨울철의 아름다운 경관을 차례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사계절의 좋은 경치를 말한 뒤, 성스러운 태평성대이니 사철 즐거운 놀이를 벌이자고 했다.
[특징]
「죽계별곡」은 순흥의 아름다운 풍속을 말한 대목은 얼마 되지 않고, 절경을 찾아가 질탕한 놀이를 벌인다고 한 부분이 많다.
[의의와 평가]
「죽계별곡」은 경기체가인 「한림별곡(翰林別曲)」이 나온 지 한 세기 정도 지난 뒤, 「관동별곡(關東別曲)」과 함께 나온 안축의 작품이다. 이 두 작품이 나옴으로써 「한림별곡」에서 한 시도가 일회용으로 그치지 않고 문학 갈래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작가가 분명하고 혼자서 창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새롭다. 「한림별곡」처럼 짓는 것은 다시 나타나지 않고, 이 둘을 잇는 작품이 조선시대 경치체가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편, 순흥면 내죽리에는 「죽계별곡」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