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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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舊石器時代 |
영어음역 | Guseokgi Sidae |
영어의미역 | Paleolithic Ag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하문식 |
[정의]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뗀석기를 사용하던 시기.
[개설]
인류가 연모를 사용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 년 전이며, 이 시기부터 빙하가 물러간 약 1만년 까지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전기 구석기는 인류가 연모를 처음 사용한 시기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시점까지다.
중기 구석기는 약 12만 년 전부터 3만 5천 년 전까지이다. 이때 사람들이 만든 연모는 종류가 다양하고 훌륭하였으며 주먹도끼·찍개·자르개·긁개·톱니날 석기 등이 있다. 후기 구석기는 약 3만 5천 년 전부터 빙하가 물러가는 1만 년 전까지이다. 돌날 몸돌·새기개 등의 뛰어난 기술이 필요한 석기를 만들었다. 또한 사실적인 예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였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를 채집하면서 먹거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작은 무리를 지어서 이동하는 생활을 하였다. 이들이 머물던 곳은 물줄기 옆이나 동굴과 같은 비교적 조망이 좋은 곳이다.
구석기시대의 연모는 재질에 따라 뗀석기·뼈연모·나무연모·뿔연모 등으로 크게 구분된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찾아지는 것은 뗀석기로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좋은 재질을 미리 골라 쓰임새에 알맞은 석기를 만들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최근까지 한반도에서 구석기 전통의 유물이 발견된 곳은 300여 곳이며 이 가운데 80여 곳이 발굴·조사되었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화성과 안성에서 1960년대 말에 뗀석기가 수습되었고 1978년 연천 전곡리 유적이 처음 발굴된 이후 한탄강과 임진강 유역에서 많은 유적이 조사되었으며 남한강 유역의 양평 병산리, 내륙 지역의 의정부 민락동, 용인 평창리, 광주 삼리, 남양주 호평 유적 등이 발굴되었다.
용인 지역에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구석기와 관련 있는 유물이 조사되지 않아 구석기시대의 인류 흔적에 대하여 관심이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6년 서울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매장 문화재 지표 조사 때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파담과 갈월, 원삼면 신촌·구수동, 이동읍 덕성리, 남사면 도장리 등에서 뗀석기가 처음 찾아졌고 1998년 양지면 평창리 유적이 발굴되었다.
[평창리 유적]
평창리 유적은 용인 지역에서 처음 발굴된 구석기 유적으로 이곳의 역사 공백기를 채워주게 되었다. 이 유적은 한강 이남의 경기 지역에서는 드물게 조사된 유적으로 대부분의 구석기 유적이 큰 강의 언저리에서 조사된 것과는 달리 구릉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평창리 유적에서 발굴된 돌날몸돌과 돌날 등의 석기는 한국 후기 구석기 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평창리 유적은 영동고속도로의 양지요금소에서 남쪽으로 약 1.5㎞ 떨어져 자리하며, 유적의 남쪽에는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경안천의 샛강인 양지천이 흐르고 있다.
발굴 조사 결과 유적의 쌓임층은 (가)층-황회색 또는 황갈색층(약 20㎝), (나)층-황색층, (다)층-갈색 찰흙층(토양 쐐기가 발달), (라)층-암갈색 찰흙층, (마)층-황갈색층, (바)층-적갈색층으로 구분된다. (나)층에서는 약 2만 5천 년 전에 분출한 일본의 아이다-탄자와(AT) 화산재가 발견되었으며 이 층의 퇴적물은 중국 황토층과 관련 있는 바람에 의한 석영 조각의 퇴적이 밝혀졌다.
석기는 (가)·(다)·(라)층에서 출토되었지만 대부분 (다)와 (라)층에서 찾아졌다. (가)층에서는 반암 또는 규질응회암을 돌감으로 이용하여 만든 돌날몸돌과 돌날 등 전형적인 후기 구석기의 늦은 시기에 해당하는 석기가 발견되었다. (다)와 (라)층에서는 석영이나 규암질을 돌감으로 이용한 석기가 나왔다. 여러 점의 몸돌과 격지는 물론 긁개·여러 면 석기·톱니날·찌르개·뚜르개·새기개·홈날·자귀·사다리꼴의 석기 등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많은 연모가 발굴되었다. 유적의 연대는 (가)층이 B.C.1만 년 전후, (다)와 (라)층이 B.C.6~3만 년쯤 형성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기타 유적·유물]
평창리 유적 이외에도 용인 지역에서는 모현읍 갈담리 파담 유적에서 몸돌과 찍개 등이 찾아졌다. 이곳은 경안천 언저리의 낮은 구릉 지대로 고토양층이 폭넓게 발달한 곳으로 구석기의 존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밖에도 갈담리 갈월 유적에서는 찍개가, 남사면 봉무리 도장골 유적에서는 몸돌과 찍개가 발견되었다.
원삼면 목신리 신촌의 충적 대지에서는 긁개가 수습된 것을 비롯하여 이동읍 천리 구수동은 상당히 넓은 범위에 걸쳐 고토양층이 발달하여 있으며 이곳에서 찍개, 긁개, 격지가 찾아졌다. 또한 이동읍 덕성리의 진위천 가장자리에 있는 단구에서는 몸돌이 출토되었다.
죽전1동에서는 여러 면 석기(몸돌), 임진산 유적의 조사 과정에서는 몸돌, 찍개 그리고 긁개, 풍덕천동의 고토양층에서는 격지, 언남동에서는 몸돌, 동백동에서는 마줏날 긁개 등이 조사되었다. 이처럼 용인 지역에서는 거의 전역에 걸쳐 구석기시대의 뗀석기가 발견되고 있으며 물줄기 옆에는 고토양층이 분포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조사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