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41 |
---|---|
한자 | 李吉甫 |
영어음역 | Lee Gilb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잔다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변은숙 |
[정의]
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이자 의관.
[가계]
본관은 용인(龍仁). 증조부는 청백리인 이백지(李伯持), 조부는 증이조참의(贈吏曹參議) 이수령(李守領), 아버지는 사헌부감찰 이효검(李孝儉)이며 어머니는 화산부원군(花山府院君) 권복(權復)의 딸이다. 부인은 윤사흔(尹士昕)의 딸이며, 아들 이원량(李元亮)을 두었다. 형제로는 이개보(李介甫)와 이우보(李祐甫)가 있다.
[활동사항]
1457년(세조 3) 문과별시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58년(세조 4) 권지승문부정자(權知承文副正字)로 임명하여 한훈(漢訓)·이문(吏文)을 정통하게 하였다. 1461년(세조 7) 사간원정언으로 삼으니, 손실경차관(損實敬差官)은 공사(公私) 양쪽의 편안함을 위하여 부지런하고 삼가는 자를 위임하도록 건의하여 시행토록 하였다.
1464년(세조 10) 7월 천문·풍수·율려(律呂)·음양·의학·사학·시학 등 7학문을 설치하고 각 문에 나이 어린 문신을 배정하여 학업을 강(講)하게 하였는데, 특히 의학에 뛰어난 이길보가 의학문을 담당하였다. 동년 8월 양심당(養心堂)에서 왕에게 7학문을 강의할 때 의학문의 담당자로서 『소문(素問)』을 강의하였다.
1466년(세조 12) 중시(重試)에서 3등으로 급제하였으며, 곧이어 발영시(拔英試)에 형조정랑(刑曹正郞)으로 응시하여 합격할 정도로 학문이 높았다. 1467년(세조 13) 장수의 재질이 있는 자 30여 명에 뽑혀 『손자(孫子)』를 읽게 하였으며, 활 만드는 법을 논하게 하였다. 또한 이길보를 좌편으로 삼아 새로 지은 형전과 호전의 잘못된 곳을 상고하여 아뢰게 하니 수정할 부분을 많이 찾아내어 각각 표범 가죽을 한 장씩 내려 주었다.
1470년(성종 1) 통훈대부행사간원사간(通訓大夫行司諫院司諫)으로 삼았으며, 1479년(성종 10) 우상(右廂)에 보내 군사를 점검하게 하였다. 여러 정승들과 병조의 당상관을 불러 안주(安州)에 진(鎭)을 옮길 것과 감옥을 다시 행하는 것의 편리함과 불편함을 의논하도록 하였다. 1481년(성종 12)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임명하였으며, 의원은 인명을 구제하는 공이 크므로, 의술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당상의 품계를 올려서 직위를 제수하는 것에 대하여 의논하도록 하였다.
1482년(성종 13) 황해도의 백성이 기아와 전염병으로 고통 받는 것을 아뢰어 구휼하게 하였다. 동년 경기관찰사(京畿觀察使)에 임명하니, 김포(金浦)·교동(喬桐)·강화(江華)·통진(通津) 지방의 흉년이 심함을 아뢰어 경창(京倉)의 쌀을 내어서 진휼하게 하였다. 1483년(성종 14) 산릉(山陵)에 머무를 때 중풍으로 병이 악화되니 임금이 약과 함께 내의원 신보종(申保宗)을 보내 주었다. 이길보가 세상을 떠나자 임금은 특별히 곽(槨) 하나와 유둔(油芚) 3장, 종이 80권과 15석의 쌀과 콩을 내려 주어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
[묘소]
묘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잔다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