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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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鳳九 |
영어음역 | Lee Bonggu |
이칭/별칭 | 충절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박재광 |
[정의]
조선 말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이익기(李翊奇)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882년(고종 1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홍문관교리로 출사하였다. 이듬해에는 병조참의에 올랐고, 1884년 사간원 대사간으로 있던 중 김옥균(金玉均)·서광범(徐光範) 등이 갑신정변을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게 원조를 요청, 청군의 지원으로 개화당 정부를 타도하였다.
그 공로로 이듬해에는 사대당 내각의 후영사(後營使) 겸 포도대장·이조참판을 역임하였고, 1885년에는 해방총관(海防總官)이 되었으나, 그해 8월 직권남용과 근무태만의 혐의로 전 정언 조진설(趙鎭卨)의 탄핵을 받아 삭직당하고 함경도 홍원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풀려나와 1893년 충청도수군절도사를 지냈고, 이어 공조판서에 올랐다.
[묘소]
진위(振威)에 임시로 장례하였다가 현재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양지리로 묘를 옮겼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충절(忠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