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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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光輔 |
영어음역 | Jo Gwangbo |
이칭/별칭 | 중익,방은,조광보(趙廣輔)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재광 |
[정의]
조선 중기의 지사.
[가계]
자는 중익(仲翼), 호는 방은(方隱). 일명은 조광보(趙廣輔)이다.
[활동사항]
조광보(趙光輔)는 식견이 고명(高明)하고 직언을 잘하였다. 연산군 때 임사홍(任士洪)의 집권으로 조정이 혼란하자 그를 죽이라고 무인(武人) 박영(朴英)에게 권하였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1507년(중종 2) 참의(參議) 유숭조(柳崇祖), 호군(護軍) 심정(沈貞), 전(前) 승지(承旨) 남곤(南袞) 등에 의하여 박원종(朴元宗)·노공필(盧公弼) 등을 해치려 하였다는 죄목으로 의관(醫官) 김공저(金公著), 서얼(庶蘖) 박경(朴耕) 등과 함께 잡혀 국문(鞫問)을 받았다.
이때, 무오사화(戊午士禍)에 연루된 현량(賢良)들의 결백을 주장하며 유자광(柳子光)을 힐책하였고, 박원종(朴元宗)에게는 폐주(廢主: 연산군)의 나인[內人]들을 첩으로 삼은 죄를 추궁하였다.
또한 함께 있던 성희안(成希顔) 등에게도 명유(名儒)로서 어찌 유자광을 섬기느냐고 공박하고, 결국 장형(杖刑)을 당하자 통곡을 그치지 않아 박원종에게 광인(狂人)으로 인정되어 조광조(趙光祖) 등과 같이 풀려났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에 있다.